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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Oct 26. 2019

글쓰기 연습은 말하기로 시작하세요.

몇 달 전부터 내가 가르치고 있는 6학년 아이.

뇌구조를 그려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해놨다.


가족, 친구가 뇌의 중심에 있는 아이.

멍도 때리고, 영어를 싫어하고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조금은 책이나 글, 공부에 대해서도 생각은 갖고 있으나, 핸드폰, tv, 만화, 공기놀이에 관심이 더 많은 6학년 여학생과의 수업.

더 어렸을 때부터 가르친 아이라 가족 같고, 마음이 쓰이는 아이이다.

어릴 때도 이뻤는데 커서도 더 이쁜 녀석.

'잘 자라주어 고마워, 네 엄마가 누구시니?'  


"자기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가 믿을만한지는 어떻게 아나요? 저는 아직 그런 것을 잘 모르겠어서요."


내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 기특한 아이.

숙제를 충실히 해온 데다 이렇게 선생님을 보람 있게 만드는 녀석이 이쁠 수밖에 없다.



불과 몇 달 전, 처음엔 좀... 어려워했었다.

글 3-4줄 쓰면 힘들어했었는데, 한 번 쓴 것에 대해 고쳐 쓰는 노력을 초반에 계속 시켰다.

'글은 너의 얼굴이고, 너의 마음이고, 너를 대신할 수도 있는 것이다'는 말을 자주 해주는 편이다.



꾸준히 지도하는 데로 따라와 주어서 생각보다 일찍 쓰기 실력이 늘었다.


글쓰기 전에 생각하기, 생각한 것을 말하기.

말한 것으로 더 깊은 대화 나누기.

그리고 글로 표현해보기.

이 작업을 꼭 거친다. 노트에 바로 쓰게 하지 않는 것이 나의 노하우인 것 같다.

이렇게까지만 해도 몇 단계를 생각하고 표현해야 하는 글은 이제 쓰기 단계에 오면 훨씬 정제되고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훨씬 수월하게 쓸 수 있게 된다.



어휘력이 생각보다 약한 아이들이 있다. 그런 경우 띄어쓰기된 단어 위주로 표시를 해보게 한다.

 

아는 단어에는 동그라미.

알듯 말 듯 정확히는 모르겠는 단어는 세모.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곳은 밑줄 치기.

그렇게 하면 단어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게 한다.

아이들이 책을 너무 빨리 읽어서 눈이 글자에 머무르는 시간이 1초밖에 안된다.

아이가 책을 보고 있더라도 눈으로 글자만 훑고 지나가는 것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보는 것'이다. 책에 머무르는 3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상징적인 개념의 시간인데, 정확히 3초가 아니라도, 숨을 고르게 쉬고 호흡을 편안하게 하는 상태의 독서.

책 읽는 시간 조차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와 시선이 느껴질때 힘을 좀 풀라고 말한다. 책은 편안한 상태에서 만나는 친구라고.


나는 도서관에 가면 종종 책보는 아이들을 관찰할 때가 많은데, 그 중에 보면 책장을 넘길 때 쌀쌀맞을 정도로 휙휙 넘기는 아이들이 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럴때 너무 안타깝다.

아... 아이야,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건데...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할 시기에 나오는 책들이 얼마나 이쁘고 좋은 내용이 많은데, 그 시기에 섭취해야할 영양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그래서 내게 오는 학생들에게 더 간절한 마음이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게 온 이상, 책은 재밌게, 글은 신나게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고 싶다.


글쓰기를 가르칠 때 내가 종종 하게 하는 몇 가지 패턴 훈련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표시한 글자 중에 세모와 밑줄 친 부분 혹은 알아두어야 할 표현은 수업 중에 뜻을 확인하고 문장에 적용해서 말하고 글 쓰게 하는 훈이다.



글을 쓰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하고 싶은 말도 없고, 말하기도 싫어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하물며 글쓰기 까지랴!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아이들이 나를 통해 알아갈 때 나는 내가 하는 일의 가치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한다.

리고 이 믿음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이의 글에서 나를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오늘 수업은 내게 더 큰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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