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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Apr 03. 2020

힘든 시기일수록 엄마가 힘을 내야 하는 이유

2월부터 수입이 거의 없는 채로 지내오면서 설마설마했는데 생각보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주변에서 아이와 지내고 있는 나를 많이 걱정하시고 정부에서 국민들의 생계와 경제적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긴급재난지원금을 마련한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말에 내 걱정이 오히려 보태졌다.

아직 법적으로 이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부양자로 남편이 가족의 건강보험금을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긴급재난지원금이 내가 아닌 남편 통장으로 들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로 주민센터에 가서 여쭤봤지만 담당자는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대뜸 난색을 표하셨다. 이런 표정으로.

출처 : 픽사베이

아직 정확한 지침이 내려온 것이 없고, 어느 기관 어느 부서에서 누가 담당할지도 모르니 전혀 해줄 말도, 들을 말도 없다는 것이다.

이해도 되는바, 나는 답답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조용히 나와서 근처 미용실로 들어갔다.

겨울부터 길어진 머리가 마음만큼이나 답답하던 차에 머리를 짧게 다듬고 싶었다.

1년 이상 고수해온 기본 스타일이 있어서 '짧게' 다듬어달라는 말에 어느 정도 예상되는 허용기준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심란한 마음을 누르며 눈을 감고 앉아서 머리도 마음도 비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남자 원장님이 내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하셨고, 바로 원장님 와이프가 어린 아기들 둘을 데리고 아빠의 작업장으로 들어오는 소리도 들었다. 어린 아기가 찡찡댈 조짐이 보이고 대기손님까지 생기자 남자 원장님은 아기를 업고 내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하셨다. 나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젊은 부부가 어린 아기 둘을 미용실에 데리고 와서, 하나는 핸드폰 쥐어주고, 하나는 업고서 힘을 합해 열심히 사시니 좋구나.. 좋게 생각하자 했다. 아이가 찡찡대기 시작하고 어수선해지자 평소엔 참 차분하게 시간 들여서 작업하시는 원장님의 손이 아무래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3배쯤 빠른 속도로 내 머리카락은 잘려나갔다.

눈을 떠보니 내 앞에는 머리만 데미무어인 내가 앉아있었다.

출처; daum 영화 '사랑과 영혼' 이미지

아뿔싸... 짧아도 너무 짧아졌다.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원장님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냐고 새삼스레 물어보셨다. 1년 이상 손질해주신 머리 길이가 있는데 새삼스레 짧아진 머리가 새삼스러운 것은 오히려 나인데... 원장님이 죄송해하시길래 나는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짧아진 머리 붙일 수도 없고, 머리야 금방 기니까 (이참에 집에 들어앉아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그동안 내가 바빠서 무심했던 것 같아서 오전에 친정에 안부전화를 했다가, 아빠가 너무 걱정하시는 목소리에 내가 그만 기분이 체해버렸다.

듣다가 듣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빠에게 솔직히 말했다.

"아빠, 지금 나한테 이렇게 걱정을 얹어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지금은 통화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나중에 전화드릴게요."

역시나 계속 무거운 아빠의 목소리에 내 마음도 좋을 리 없었다.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워지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기는 또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게 부유하고 넉넉하지 않은 이상은 빤한 기본 살림에 겨우 겨우 지나가는 일상일 텐데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많은 행운과 도움 주시려는 마음들이 모아져서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그런데 코로나보다 더 힘든 것은 어쩌면, 걱정 쓰나미이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나를 향해 불어닥치는 것 같은 걱정 더미들.. 내 걱정만도 무거운데 자꾸만 만들어낸 걱정을 나한테 안겨주는 지인들이 있다.

'생활하기는 어때, 어떻게 지내, 아이들은, 뭐 먹고살아, 돈은 어떻게 벌어, 수업은 어떻게 해, 다음 달은 뭐 먹고살아, 다음 달은 언제 돈이 들어와? 어떡할 거야, 남편은 양육비 잘 줘?"


'생활하기는 할 만하고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고, 아이들은 밥 잘 먹고살고,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중에 수업은 못하고 있어서 수입은 없고 냉장고 파먹고 살고 있다. 당장 이번 달부터 어떻게 좀 지나고 다음 달은 다음 달에 생각하면 안 될까? 앞으로 계획까지는 구구절절 궁금해서 묻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 계획을 왜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하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걱정은 보태지 마, 누누이 말하지만, 보태려면 돈을 주는 게 가장 깔끔해.

남편은 양육비를 안 주고 있어서 이제 전쟁 시작이야.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배려와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으니.'

 

내가 3주 동안 가장 힘든 것은 수입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내다 버리는 것 같은 '걱정'이 자꾸 쌓여서였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걱정 바이러스들. 대체 나를 위한 걱정인지 남의 일을 바라보는 환란 중의 즐거움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의 걱정 소리. 나는 이제 삐뚤어질 테다. 네 머리에서 나온 걱정 내 머리로 보내지 마!


하루에 5-6번씩 전화와 카톡으로 '어떻게 지내?'부터 시작해서 남편 욕까지. 하고 싶은 말부터 어떻게 지내라는 말까지 A부터 Z까지 똑같은 말을 하고 끊는 원수들 때문에 아주 밥이 안 넘어간다.


모두가 힘들다. 나만 힘들지 않고, 나는 사실 현실 개념이 약해서인지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희망차고 살만했고 재미있었다. 글도 쓰고.

이렇게 좋았던 적은 또 언제였던가 싶은데...


개리 비숍의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도시 반대편으로 가보거나 사무실 혹은 이웃을 한번 둘러보라. 당신보다 더한 문제를 가진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다. 당신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다 같은 처지다. 남의 삶은 늘 하이라이트만 보이고, 내 삶은 늘 무대 뒤가 생각난다.

나는 항상 내 삶의 무대가 중요하거든!

내 무대 뒤도 안 궁금했다. 당장 생방송부터 어떻게든 잘 만들어야 하는 판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에 요즘은 적절히 귀를 닫을 필요가 있다.

안그러면 마음이 복잡해져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중략)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중략)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문병란 시인의 시 「희망가」 중에서


사실 구름 위 하늘은 항상 파랗고

태양이 빛나고 있는 자리도 항상 같다.

힘든 때일수록 힘을 내야 하는 이유,

나는 세 아이의 엄마이니까.

사실 나 혼자면 힘들게 뭐가 있을까, 내 한 몸 먹고 자고 살아가는 일은 차라리 쉽다. 많은 사람의 걱정들이 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나를 향해 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힘을 낼 것이니, 제발 내가 여러 번 말하지만, 걱정 말고 돈으로. 그게 내가 아니어도 누구한테든! 허락도 받지 않고 걱정 더미를  갖가다  안기지 마시길! 그것이 받는 입장에서는 정말 달갑지 않고,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혼소송 중인 가정에게 긴급재난 지원비는

아빠가 아닌, 아이들을 양육하는 엄마에게로 지급되면 좋겠다.


이혼이 간단하고 짧고 쉽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알콩달콩 살아가는 부부들은 어련히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혼란스럽고 힘든 가정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서 이혼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고

정말 살기 위해 이혼해야 하는 가정은 하루빨리 안정되고 편안한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혼이 그토록 쉬워야 오히려 이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이 와중에 나에게 긴급한 건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이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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