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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30. 2020

이혼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은하수다방 칼럼연재 by아인잠

은하수다방의 정기연재 칼럼을 소개합니다.

7월에는 웹툰 형식으로도 볼 수 있으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이혼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2004년도에 개봉된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라는 영화에 보면, 이혼 경력을 지닌 50대 여성과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60대 남성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섹스를 할 때조차 ‘혈압과 심장마비’를 고려해야하는 중년의 커플에서 로맨스 코미디다운 웃음이 터져나온다. 중년의 사랑을 소재로 이토록 유쾌하고 재미있고 낭만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표현한 영화가 또 있을까.

영화 중에 남자주인공인 잭 니콜슨이 지금껏 자신이 만났던 여자들을 다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신에게 만약 기회가 온다면, 다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은,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기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을땐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어버린 뒤에야 그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이혼이 그렇다. 함께 있을 때는 몰랐다가 헤어지는 마당이 되면, 지나온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야 할 것들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혼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은 결혼해서 백년해로하며 잘 살 수 있을거라 믿었던 젊은날의 소망이며, 나는 이혼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희망이며, 별일 없이 남들처럼 잘 살아가는 듯 보이는 편안함이다.

그와의 만남이 시작되고 결혼에 이르렀던 기억과, 결혼 후 소중한 아이를 품에 하나씩 안게 되었을때의 감격과, 함께 해왔던 추억들은 이제 나만의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고, 용기있게 세상을 향해 걸어나가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당신은 이혼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따박따박 통장에 들어오던 남편의 월급?

밉다밉다 해도 내 남편밖에 없을 것 같은 안심?

부부싸움을 격렬히 하고도 이불 안에서는 따뜻하게 느껴지던 어느 밤에 대한 추억?

안보고 살고싶지만 막상 안보면 내가 더 불안할 것 같은 못견딤?

이혼할 때 걱정되는 것이 여자 입장에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가 하나가 있건, 둘있건,셋있건, 그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가야 할 현실과 미래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이혼을 하겠다고 선언하면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온 몸을 감싼다. 나조차도 미치고 팔짝 뛰겠는 순간에 온 세상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제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 길게 인생까진 안가더라도 당장 오늘, 내일, 모레 어떻게 살 것인가. 돈은 어떻게 벌고, 집은 어떻게 구해서 어디가서 살아야 할지,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 전반 모든 것이 엄마로서 염려되는 부분이다.

이혼할 때에는 남편이 진정한 ‘남’이 된다. ‘남’이 되면 그나마 다행인데 ‘남’보다 못하게 되니 문제인 것이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도 많아서 ‘드파더’라는 사이트에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아빠들이 공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거나, 이혼 후 힘겹게 홀로 아이들과 살아가는 엄마들도 많다.

내가 이혼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보태주었다. 보태려면 돈을 보태주는 것이 가장 고마운 일인데, 돈은 안보태고 자꾸만 걱정에 시름을 안겨주었다. 그럴 때 당당하게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 이혼할 때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고,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삶에 대하여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주변의 설득에 내가 휘둘려서 이혼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된다.

이혼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혼하고도 잘만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이혼은 새로운 시작이며 새롭게 살아볼 수 있다는 기회의 땅이다.

나의 경우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혼 전 별거로 집을 떠나올때에도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태주었다. 그래서 기적적으로 보증금을 마련하고 필요한 세간살이와 집기들을 지인들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어깨를 두드리며, 혹은 안아주며 잘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왕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용기있게 살아가라고 격려해주었다.

나 역시 그럴 각오로 결정한 일이기에 후련하고 미련없이 나올 수 있었다.

앞으로 갚아야할 그들의 사랑과 인정, 배려의 빚은 내게 살아갈 ‘힘’이 되고 있다.


별거 후 독립하는 시간을 본격적으로 보냈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이혼을 하기 위한 체력과 경제력을 확보했다. 지인들의 도움과 인간관계 역시, 큰 도움이었다. 이혼하기 위해 그렇게 자신을 지지해주는 인적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다. 평소에 신뢰를 쌓고 진정있는 대화를 나누고, 가족 이상의 끈끈한 정을 만들며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사는게 외롭거나 두렵지가 않다.

그것을 알게 된 건, 하필 이혼하는 과정에서였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고, 누군가의 말 한 마디와 따뜻한 시선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혼할 때 버려야 할 것들도 있지만,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용기와 독립심, 자존감과 삶에 대한 열정, 꿈과 미래에 대한 의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고, 마음 먹은 일을 행동하는 결단력 등, 이혼할 때 필요한 능력은 정작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과 같았다.

결혼 생활 중에 온전히 내가 남편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면, 이혼 후에도 할 수 없다.

그럴 바에야 이혼할 수 없고, 남편과 의기투합해서 제대로 살아갈 생각을 해야한다.

나의 경우는 제대로 못살 것 같으면 차라리 이혼하자는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이혼하고보니 사는 것이 이렇게 자유롭고 자주적일 수가 없다. 내가 벌어서 내가 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과 열정을 사용한다.

남편에 매여, 시댁에 매여, 집안일에 매여, 게다가 독박육아에 독박살림에 내 청춘이 넘어가는 해처럼 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이혼할 때 친정 부모님의 신뢰와 특히 최측근 지인들이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혼이 그나마 쉬웠을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말린다고 해도, 내가 이혼을 원한다면 나는 더욱 용맹해져야 한다. 세상의 잣대와 편견으로부터 나와 아이들을 지키고,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더 강해져야하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어떤 일이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것이 이혼이어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살아간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돈을 쫓을 것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람을 쫓을 것이다.

나는 나의 꿈과 아이들의 행복, 우리 가족의 안위가 중요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굴레 속에서 허구헌날 싸우기가 싫었고, 꿈을 이루고 싶었고, 나와 아이들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을 원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게 좋았다. 흐린 날에는 나의 눈물이 가려져서 좋았고, 울적한 날에는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주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즈음에 나는 법원을 다녔고, 이혼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고, 그 와중에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느라 감정적으로 지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었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 내가 아이들을 보는 시선, 세상을 향한 나의 시선,

나의 시선은 나의 최선을 이끌어냈다. 나는 세상을 향해 이혼 후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고, 내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방향을 알 수 있었다.

기억할 것은, 사람들은 의외로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이혼한 이야기는 머지않아 잊혀지고 관심 밖으로 멀어질 것이다. 그때까지만 견디면 된다. 그리하여서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나의 삶에 집중하는 일이다. 이혼하며 걱정할 것은 없다. 그저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그토록 원했던 이혼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주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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