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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l 02. 2020

새벽을 깨우는 소리

요즘 산도르 마라이의 장편소설, <결혼의 변화>를 읽는 중이다.

상, 하권으로 나뉘어 있어서, 하나의 책이지만 2권의 책을 읽어야 해서, 이번 주 내에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내용이 흥미로워서 한창 하권을 읽고 있다. 벌써부터 결말이 어찌 될지 무척 궁금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고, 그 삶 속에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눈에 띄는 문장에는 다른 분들이 그러듯이, 나 역시 밑줄을 긋는데, 제목처럼 결혼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있어 생각할 질문을 던져주는 부분이 있어서,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진 않지만, 읽을수록 느껴지는 재미가 있다.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새벽에 대한 표현인데,

"새벽 세 시만 되면 가슴이 뛰는 바람에 저절로 눈이 떠져. (중략). 의사 말로는 심장 박동 소리가 달라지는 시간이래. (중략) 또 새벽 세 시에 지구의 자기장이 바뀐다고 말한 사람도 있어. (중략) 그 사람은 어떤 스위스 책에서 읽었다고 했어."


일찍 일어나는 루틴을 만들고, 그 시간에 책을 읽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새벽 3시를 기점으로 그전에 자거나, 그 이후에 깨어서 작업하는 경향이 있다. 낮에는 수업하고,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모두가 잠든 시간이 아무래도 집중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표현한 '새벽 3시'라는 시간은 정말 흥미로운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뛰는 바람에 눈이 저절로 떠지는 시간, 심장 박동 소리가 달라지는 시간. 지구의 자기장이 바뀌는 시간.'

이제부터 새벽 3시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새벽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문장은 막상 따로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밤에 창가에 서서 리구리아 거리를 바라볼 때가 많아. 그러면 마치 중세시대처럼 누군가가 담벼락을 따라서 살금살금 걸어가는 것만 같아. 그게 누구인지 알아? (중략) 내 창문 아래서 살그머니 리구리아 거리를 지나고 로마를 지나고 전 세계를 지나가는 것은 바로 늙음이야."

- <산도르 마라이, 결혼의 변화 下권, 455p>


두근거리는 새벽시간의 떨림도 느껴보고 싶지만, 늙음이 담벼락을 지나가고 있는 듯한 밤의 창가에서도 서있고 싶다. 나의 늙음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워서,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붙잡고 싶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늙음이 나중에 나를 찾아온다고 해도 반겨맞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밤과, 새벽을 이제 다른 의미로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기다리고 소중히 여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알뜰하게 맞이하고 싶다.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보니, 시간은 맞이하는 것이다.

시간을 맞이하여, 나는 시간을 만나고, 시간 안에서 시간이 주는 시간을 느낀다.


오늘은 새벽 4시 43분에 첫 새소리가 들렸다.

새소리.

얼마나 맑고 고운지, 가만히 듣고 있기가 황송스러웠다.

요즘은 새벽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하긴, 여름이니...

가끔 새벽에 일찍 일어나거나, 혹은 새벽까지 깨어있거나 할 때에 새소리를 들으면, 유독 새벽녘 새소리가 참 힘차게 느껴진다. 마치 새벽을 깨우기라도 하듯, 아니면 새들도 차 소리, 사람 소리로 소란스럽지 않은 새벽시간이 좋은 건지, 활기차고 활발한 느낌, 자유가 느껴진다.

새벽을 '소리'로 깨우는 생명체. 새는 어쩜 그렇게 시간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소리를 낼까.

햇살보다 더 빛나게 느껴지는 새벽의 새소리는 마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모닝콜 같다.


우리가 집 안에서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하고, 어둠을 피해 편안히 휴식할 동안, 새들은 어딘가에서 몸을 쉬겠지만, 어쩜 그렇게 새벽마다 한결같은 소리를 내는지, 빛이 먼저인지, 새소리가 먼저 인지는 모르겠지만, 빛을 마중하는 듯, 빛을 반기는 듯, 새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며 온 산야를 깨운다.

도시의 새벽은 이제 서서히 빛을 낸다. 신호등의 점멸등이 규칙적인 신호로 바뀌고, 가로등이 꺼지고, 일찍 나서는 사람들의 출근 소리로 점점 채워진다. 아파트에 불빛이 하나 둘 켜지면 새소리도 더 활기를 띤다.


어딘지 모르게 새와 새벽은 닮았다. 새에 한 글자만 더하면 새벽이 되어서 그런가.

왠지 새벽이 '새'의 것인 양, 그렇게 잘 어울리고, 새벽 공기를 느끼며 하늘을 를 때 새는 새벽의 품 안에서 마음껏 자유롭다. 그래서 새벽은 새의 놀이터이고, 자유이고, 새의 하늘이 된다.


 


<새소리에 지는 꽃>     - 도종환


어제는 바람 때문에 꽃 지더니

오늘은 새소리에 꽃이 지누나

매화꽃 떨어진 위로

바람 소리를 잘게 잘게 썰어서

내려 보내는 새 몇 마리     


기와지붕 수막새 사이 오가며

그네처럼 목소리 흔들어

땅에 보내는 새 몇 마리     


어제는 바람 때문에 꽃 지더니

오늘은 새소리에 꽃이 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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