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Aug 14. 2020

글을 써야 한다면, 바로 오늘, 지금!

꿋꿋하게 글을 써나가시길 바래요.

방송작가로 일할 때 60분 방송 다큐멘터리 원고를 쓰려면

2박 3일을 꼬박 밤새다시피 해서 원고지 분량 30페이지 전후로 썼던 것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첫날밤. 나는 집에서 나와 건널목을 좀 걸어 나가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두 통을 사서 들고 왔다. 졸릴 때, 힘들 때, 허전할 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언제든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서 퍼먹으면서, 이 아이스크림 두 통을 다 먹으면, 내 원고는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아이스크림이 줄어갈수록, 원고는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두 통 중에서 한 통을 다 먹으면, 원고 분량의 50%가 완성된 것.

두 번째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먹다가, 드디어 밑바닥이 드러나는 순간이면, 어느 정도 한 시름 놓아도 되는, 원고 마감단계.

그러나 그때 가장 큰 집중력이 필요하다.

막판 힘을 다해서, 최종적으로 원고 완성이 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원고를 다 쓰고도 마지막 에필로그 몇 줄이 써지지 않아서 몇 시간 동안 앉았다 일어났다 머리를 쥐어뜯었다가 벽에 가서 머리를 대고 서있다가 물구나무를 섰다가, 갑자기 스트레칭을 했다가 구구단도 외웠다.

머리를 활성화시키는 나만의 습관이랄까.

'내 머리야 내 머리야, 어서 힘을 내, 생각을 해내야 해.'

막판에 글이 떠올라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바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 살았다 싶은 순간이었다.

2박 3일, 그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긴장감을 이기고, 과연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도 이기고.

글을 쓸 때에는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글에 대해서 초연 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매번 글쓰기는 처음 나가는 맞선 자리보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민망하고 송구스러웠다.

글을 감히 내가 써도 될까, 내가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은 매번 나를 시험하고, 시험에 들게 했다.

아직도 글을 쓰게 될 줄은 모르고서 내가. 언젠간 그 공포스러운 글쓰기를 내 인생에서 멈추어도 될 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글을 처음 썼던 순간이 나는 항상 생각이 난다.

'너는 왜 글이 발전이 없니!'

독수리 같은 날카로운 눈이 안경 뒤에서 나를 쏘아보며 반짝였다. 무심하고 온기 없는 눈은 나를 향해 지탄하고 나무라는 것일 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줄 리가 만무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수정하고 또 쓰고 또 쓰고. 그렇게 버텨가는 정도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막내작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몇 년 뒤에야 알게 된 것은, 다른 막내작가들은 메인작가가 차마 막내작가의 원고 상태 그대로를 방송에 내보낼 수가 없어서 메인작가가 다 고쳐서 쓴 것인데, 나의 사수는 내 원고에 토씨 하나 건들지 않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당시에 나의 못나기 그지없는 방송원고는 여지없이 방송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방송으로 송출되었고.

나는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받아냈다.

지나고 보니 그건 대단한 행운(?)이자 기회였다.

내 글이 차근차근, 나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게 했던 선배의 배려와 믿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은 어쩔 수 없이 직접 써야 한다. 그래야 발전을 하고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나에게 글을 보내주시는 소중한 분들의 글을 냉정하게 그 상태 그대로 보내지는 못하겠다. 

나름대로 첨삭해서 보내드리면, 그것을 보고 다듬고 이렇게 저렇게 고쳐보시라고 한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글을 쓸 때에 어쩔 줄을 모르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 그 외롭고 무섭기까지 한 마음을 짐작하기에 최대한 따뜻하게 피드백을 해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시고

많은 분들이 자신이 쓰고싶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아플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슬플때 슬프다고 말할 수 있고

화날때 화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지 않기 시작한다면

여지없이

어느 순간 말하지 않게 된 자신을 느끼게 될 거예요.

그래서

건강하게

글을 써나가시길, 

꿋꿋하게 

언제라도

글을 써나가시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야 길을 찾았음을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내가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지금 힘을 얻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슬플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눈물을 닦고 있는 중이고

나를 외로울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지금이 가장 편안합니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졌고

선택할 수 있고, 싸울 수 있고, 이길 수 있고, 해낼 수 있음을 느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겐 특별한 'Dele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