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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Dec 06. 2020

감나무에 열린 감처럼 익어가는 글쓰기

발행하지 않고 있는 밀린 글들이 이만큼 있다.

감나무에 감 열린 듯이...

심지어 익지도 않고 떫어서 내놓을 수가 없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기만 하고 시간이 지나서 익어가기를, 자연에 기대어서 바라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한 번 먹어볼 만한 '글감'이 되어있지 않을까 해서...


글은 쓸수록 어렵네요. 하지만 쓰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 '글쓰기'예요.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에 글쓰기는 '인생을 더 가까운 거리에서 구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쓰여있다.

인생을 더 가까운 거리에서 구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글쓰기.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는데, 일곱 살 아이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기를 썼나 넘겨보는데, 내가 알지 못했던, '구체적으로 관찰한 기회'가 한 줄 한 줄 적혀있었다.

아이의 일기에서 새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글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

하지만 그림을 못 그릴 때도 있다.

왜 그러냐면 방해가 돼서 그렇다.

방해가 안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방해가 된다.

나는 신경이 쓰였다.

방해만 안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시계

왜 시계는 뱅뱅 돌까 궁금하다.

너무 궁금해서 못 참겠다.

근데 시계도 건전지가 사용되는지 궁금했다.

건전지가 사용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난 하루 종일 기쁘다.

그럼 나는 난리가 난다.



#고무나무

고무나무는 뭔가 이상하다.

난 가시인 줄 알았는데 나뭇잎이었다.

그리고 수상한 점은 모래가 진한 흙도 있고 연한 흙도 있다.

나는 그게 수상하다.



#엄마의 그림

엄마의 그림은 최고다.

엄마의 그림은 다들 보면 감탄한다.

나도 그런다.



#모과

모과는 좋은 향기와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나는 그 향기를 맡으면 고요해진다.



#음악

음악은 아름답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진다.

내 마음은 좋다.



#지우개

지우개는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잘 안 지워지는 지우개도 있다.



#오빠

우리 오빠는 성격이 나쁘다.

그래서 난 힘들다.



#똥

똥은 냄새가 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똥이라고 부른다.



#버스

오늘 아침 버스를 놓쳤다, 버스는 그런 줄도 모른다.



#홈런볼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서 홈런볼을 쏟았다. 많이 쏟아서 아까웠다. 엄마는 조금 우는 것 같았다.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하는, 앞선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든, 누군가 내 글에 대해 '실패'라 하든 '실수'라 하든,

끝까지 써보는 것이 글쓰기에 있어 중요한 또 한 가지 임을 생각해본다.

글을 쓰기 두려울 때에는, 멈칫거려질 때는 솔직하게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나는 일곱 살이다.

일곱 살인데 이만큼 쓰면

엄~~ 청 잘 쓰는 거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 쓰느니 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 카툰 작가 제임스 터버의 말




https://brunch.co.kr/@uprayer/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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