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가리켜 ‘바람에 나부껴 공중에서 이리저리 흩날리다가 나풀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그다음 구절에 헤르만 헤세는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얼마 안 되는 숫자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별 같은 존재로서, 고정불변의 궤도를 따라서 걸으며, 어떤 바람도 그들에게 다다르지는 못하지. 그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그들 나름의 법칙과 궤도를 지니고 있지.’
이쯤 되면,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바람에 나부껴 이리저리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나풀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은 존재인지,
고정불변의 궤도를 따라서 걸어가는, 자신의 내면에 나름의 법칙과 궤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인지.
자신에 대한 이러한 자각은 커다란 숙제를 불러온다.
싯다르타 또한 자신의 상태로 눈을 돌려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마치 도공(陶工)의 선반이 일단 돌기 시작하면 한참 오랫동안 돌다가 서서히 힘이 떨어져 끝내는 딱 멈추고 마는 것처럼, 싯다르타의 영혼 속에서도 금욕의 바퀴, 사색의 바퀴, 분별의 바퀴가 오랫동안 돌았고 아직도 여전히 돌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천천히 멈출 듯 말 듯 머뭇머뭇 돌며 정지 상태에 가까이 와 있었다.’
천천히 멈출 듯 말 듯,
머뭇머뭇 돌며
정지 상태에... 가까이... 와... 있었다.
싯다르타에는 유독 긴 문장이 많아서 쉼표를 넣어가며 끊어서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쩌면 이 책의 매력이 그 부분이 아닌가 한다.
쉼표의 의미.
우리는 너무나 급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돌아볼 여유도 없이,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들처럼, 우르르 몰려가는 떼를 따라서 맹목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는지조차 모르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때론 짓밟고 넘어뜨리기도 하면서.
싯다르타는 자각한다.
‘무가치하게, 무가치하고도 무의미하게 자기의 인생을 여태껏 질질 끌고 왔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꿈에서였다.
카말라의 금빛 찬란한 새장에서 살고 있던 자그맣고 희귀한 새가 죽어 있었다.
꿈에서 그것은 이미 시체가 되어 바닥에 딱딱하게 굳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새를 새장에서 끄집어내어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골목 밖으로 휙하니 던져버린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마음이 쓰리도록 아파왔다. 그것은 마치 그 새와 함께 ‘자기의 내면에 있는 가치 있는 모든 것과 선(善)을 송두리째 내던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그는 고통으로 뒤범벅되어 꿈에서 깨어난다.
암담하고 홀로 외롭게 서있는 기분, 무엇을 향해 살아온 것인지, 자기가 대체 언제 행복이라는 것을 체험해보았는지, 자신에게 묻는다.
그 뒤 싯다르타는 망고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한다.
‘그날 하루 종일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고빈다를 생각하면서, 고타마를 생각하면서... 겨우 카마스와미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하여 자기가 그 사람들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단 말인가?’
또 자각.
방향.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상태인가.
나를 잃지 않고 나를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생각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했던 싯다르타의 질문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자신의 길을 찾는 여정에 오른다.
<나는 여기 망고나무 아래, 나의 정원에 앉아있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24p
내가 지금 앉아있는 곳에서,
바로 지금,
내 안에 있는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지만,
단 한 가지.
내 안에 있는 금빛 찬란한 새장에 살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
그 새의 지저귐이 멈추기 전에 새장 문을 활짝 열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살려주기를.
손안에 작은 새여
너의 지저귐에 날마다 눈뜨며 날마다 행복하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