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의 시작
결혼 13년 차,
나는 지금 처음으로 나의 집을 떠나서 생활하고 있는 중입니다. 세 남매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지내는 요즘이 마치 휴가를 떠나온 기분입니다. 휴가라고 하는 것은 돌아갈 집도, 돌아가야 할 시점도 정해진 시한부 생활이지만, 저는 떠나왔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그와 나'의 집으로부터요.
'그와 나'의 집이라고 표현했지만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의 명의로 된 그의 집이지만, 나의 집이었고, 그의 명의로 된 그의 집이지만 내 손길과 내 노력이 곳곳에 더 많이 담겨있는 집이었어요. 쓸고 닦고 매만지고, 곳곳에 나와 아이들의 시선과 손길이 닿아있고 머물러온 삶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는 '우리'들의 집이었어요.
그런데 참 씁쓸한 것은, '그'는 화가 나면 '그'의 집이니 나가라고 했고 갈 곳 없는 나는 나가지 못하고 참았었어요. 그러나 저는 비로소 나왔습니다. 그토록 들어왔던, 그래요! 그의 집에서요.
이렇게 홀가분하고 편안한 것을, 자유로운 것을... 왜 그렇게 움켜쥐고 있었을까요.
아니에요. 그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자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바란 독립은 이런 모습, 이런 시기는 아니었어요. 내 힘으로 이루는 온전한 나의 성장과 독립.
그로 인한 완전한 홀로서기를 기다려왔거든요.
뭐, 어때요.
운명은 때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힘으로 나를 떠밀고 가는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조용히 말했어요.
'내일 이혼 서류 준비하세요.'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어요. 왜냐고. 그저 내가 꿈꿔왔던 이혼을 이제 드디어 하게 되는 것인지 차라리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날이 밝기를 기다렸어요.
다음날, 이혼 서류를 준비하여 우리는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거주지와 가까운 법원으로요.
그런데 몰랐던 사실이 있었어요.
미성년자 자녀를 둔 부모는 이혼 서류 접수 이전에 부모 교육을 부모가 함께 받아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방문한 법원에서는 그날 부모교육 일정이 없었어요.
한시라도 빨리 이혼 서류를 접수하고 싶었던 (결혼 후 처음으로 하나의 소망을 가진듯했던) '우리'는 담당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바로 이혼 서류 접수를 하고 싶은데요...'
그랬더니 인근 도시로 가서 해당 법원으로 가면 일주일에 거의 매일 부모교육 일정이 있으니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의 차를 타고 법원으로 가기를 기다렸어요. 부디 일이 틀어지지 않아서 이혼 서류 접수를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