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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싫어진 이유

by 아인잠

1~2년 전, 온 가족이 가까운 산으로 등산을 간 적이 있었다.

등산을 마치고 산길을 내려오다가 내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은 적이 있다. 운동화 밑창이 너무 닳아서 맨질맨질해졌고, 신발 밑창이 미끄러워진 탓에 조심한다고 했지만, 기어이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되게 아팠다. 나의 가볍지 않은 온 몸무게로 내리찍듯이 엉덩방아를 찧었고, 내 귀에 꽝!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는 사람들, 내려가는 사람들이 놀라서 걱정스럽게 다 쳐다보았고, 다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가 어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런데 나는 마음과 달리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엉덩이뼈가 너무 아팠다.

몇 년 전 사고도 생각이 났다. 둘째 아이를 낳고 몇 년 뒤였는데 어느 겨울날, 눈길에 미끄러져서 몸이 붕~ 떠오른 다음에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때 유산이 되었다. 머리까지 부딪쳐서 5분 정도 의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누워있었다. 그 기억이 언뜻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그제서야 몸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눈 앞에 어느 남자의 손이 보였다.

'남편 손인가?' 일말의 기대로 눈을 들었을 때, 내 눈 앞에 보인 것은 나를 도와주려고 다가온 다른 누군가의 남편이었다.

"괜찮으세요? 도와드릴게요,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하면서 친절하게 다가오셨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요, 저기 남편이 있어요..." 라고 말했다. 실제로 저만치 남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남자가 어정쩡하게 서서는 황당하다는 듯 남편을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보면서 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데 왜..." ('얼른 다가와서 도와주지 않고 저만치 서계시기만 한 거예요?')

나는 어색하고 면목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어서 일어나고만 싶었다.

"......"

그런데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분의 행동이었다.

나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면서도 괜찮다고 말했고, 저만치 남편이 있다고도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도와주지도 못한채 한동안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떻게든 도와주던지, 내가 일어나는 모습을 확인하고 얼른 지나가고싶어하는 느낌이었다.


나보다 이삼십 미터 앞서가던 남편은 내가 미끄러져 주저앉아 있는것을 알고는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나를 보고만 있었다. 내가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데도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그냥 보고만 서있었다.

그런 남편이 있는 줄 모르고, 누군가의 남편이 나에게 다가와 손내밀어 도와주려고 하는 찰나였고, 내가 '저기 남편이 있어요'라는 말에 그제야 그는 내 남편을 보았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심해서 가세요"라고 말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내가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자 없느니만도 못했던 내 남편은 그렇게 또 나에게 하나의 몹쓸 추억을 남긴 채,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산을 내려갔다.

등산을 함께 한다는 것은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고 손내밀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부가 함께 하기에 꽤 좋은 취미이다. 산을 오르면서 나누지못했던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좋은 공기와 경치 속에서 마음을 릴렉스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그러나 우리의 등산 목적은 오로지 아이들과의 산행이었고, 그냥 산에 각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관행이었다.

그나마 요즘은 등산도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런 하나하나의 기억들이 참 쉽게 잊히지 않고 마음에 남아서 찌꺼기가 쌓여간다. 화석이 될 것 같다. 내 마음속에.



신기하고 궁금하다.

남의 남편은 웬지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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