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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달리는 차 속에서 그의 바닥을 보았다.

by 아인잠

'이혼합니다.'


이혼 서류를 작성하여 법원을 향해 달려가는 차 속에서 그는 처가의 장인어른께 간단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평소에는 안부전화도, 생사확인도 하지 않는, 장인어른께 말이죠...)

저는 그 사실을 듣고 분노를 넘어 경멸과 혐오의 감정이 치솟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억눌러야 했습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서류를 접수하기도 전에 어른께 문자메시지를 보낸 걸까요.

참으로 무례하고 경솔하고 막돼먹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는 이어서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엄마, 이혼하러 가요. 그렇게 되었어... 애들은 애엄마가 알아서 키운데... 나 살 빠지는 것 봐.... 뭐 살다 보면.. 또 과부 만나 결혼하면 돼지...'


이런 통화를 하면서 팔순 노모에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남편의 음성을 나는 그의 차 뒷좌석에 앉아서 온몸으로 아프게 받아내었습니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의 그를 어떻게 살찌워야 하는지, 그렇게 강박적이고 결벽 증세 있어 아무것이나 먹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포동포동 살이 오르게 만들어놨어야 바람직한 아내였는지, 글쎄요, 저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아무튼... 그때 하필 주말에는 시어머니의 팔순 식사가 예약되어 있었어요.

팔순 노모가 그날 편안하게 식사라도 한 끼 할 수 있도록 그런 연락은 뒤로 미루어도 충분했을 텐데, 철없는 막내아들은 팔순 식사자리를 앞둔 노모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 얘기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법원 앞에 드디어 도착했어요.

바라고 바라던, 꿈꾸고 꿈꿨던, 기다리고 기다려온 그 순간, 저는 맑고 밝은 햇살 아래 찌는 듯한 더위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어서 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침내, 오후 1시 30분. 예정된 시간이 되어 우리는 법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말고도 여러 부부들이 법원 부모교육 장소에 모였어요. 이혼하는 부부가 매일매일 이만큼씩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공통점은, 각각 불편한 모습으로 떨어져 앉는 모습이었어요, 저 역시 의자 한 칸 정도의 간격을 두고 남편과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리고 앞 줄에 앉은 부부를 보았어요. 신기하게도 나란히 자리에 앉아있었어요.

'저 부부는 이혼도 쿨하게 하나보다', '나란히 앉을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은 되나 보다' 생각도 들었어요...

나도 이혼하러 가서 앉은 마당에 남의 부부사에 관심이라기보다는... 그저 저 아내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 남편도 얼마나 아내를 힘들게 했을까... 오죽했을까... 서로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부모교육 시간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참 더디게 가더군요...애꿎은 휴대폰으로 시간만 계속 확인하면서 무사히 이혼접수를 하고 법원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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