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에 위치한 부부욕실은 아무래도 아침저녁으로 우리 부부가사용하는 곳이다 보니 자주 청소를 하게 된다. 바닥에 두는 것들은 거의 없고, 칫솔이나 치약 같은 것들도 벽면에 붙여놔서 사용에도 편하고 깔끔한 욕실 유지도 쉽게 할 수 있다. 엄청나게 깨끗하다고 말할 자신감은 없지만 뭐 어느 정도 깨끗한 편이라고는 말할 수 있는 정도.
부부욕실에서 사용하는 수건도
집들이 선물로 받은 예쁜 수건세트 덕분에
원톤으로 맞추어져 있어서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호텔 들어가듯
정돈된 느낌을 받는다.
거실 옆에 위치한 공용욕실은 아이가 씻을 때나 손님들이 놀러 왔을 때 사용하는 공간이다. 아이가 사용하다 보니 무채색의 부부욕실과는 달리 알록달록한 색상들이 많이 보이고, 아이의 세면용품이나 발 받침대, 물놀이 장난감과 같은 아이용품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할 때뿐만 아니라 외출 후에 돌아왔을 때, 또는 너무 뛰어놀아 땀이 많이 흘렸을 때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공간.
그래서 수건이란 수건들이 욕실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늘 보던 그림이라 그랬는지 높이 쌓여 자리 잡을 수도 없이 가득 찬 수건들을 보고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든 적이 없었다.
- 우리 집에 수건이 이렇게 많았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건조기를 돌리고 빨랫감을 가져와TV를 보며 개키고 있는데,
갑자기 알록달록 제각각의 모양을 한 수건들이 눈에 가득 찼다.
원래 이렇게 수건이 많았나? 뭐지?
- 이건 너무 오래됐어. 와 10년이나 된 거네. 비워야겠다.
- 너무 얇아서 쓸 때마다 불편했어. 너도 나가거라.
- 이건 너무 표면이 꺼끌꺼끌했어. 안녕.
오래돼서, 너무 얇아서 쓰면서도 불편해서 등 저마다의 버릴 이유가 생긴 수건들을 하나씩 고르기 시작했다. 비우는 데에는 이미 도가 튼 대로 튼 나는 마음먹은 이상 과감했다.
'비워야지'라는 결심을 하고 나면금방 비우는 날 보며 남편은 '가끔 아깝지 않아?'라고 되묻지만
나에겐 아까운 일이 아니다.
연인들끼리 이별할 때도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승자야.
미련 없어. 좋아할 때 아낌없이 써왔거든.
그동안 참 알차게도 써왔어.
- 수건을 어떻게 버려야 하지.혹시 필요한 곳이 있지 않을까?
비울 수건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다행히 유기견 센터에서는 수건과 얇은 담요 같은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와 정말 다행이다-
수건기부는 택배로 보내면 되는데 보낼 때 여러 겹을 겹쳐서 예쁘게 접어 보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열심히 일한 수건들이
그곳에서도 자신들의 소임을 다할 수 있길
기원하며 차곡차곡 접은 수건들.
예쁘게 접은 수건들을 챙겨 아이와 우체국에 들렀다.
- 이게 뭐야?
- 선물이야. 강아지들한테 주는 선물.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뭐라 딱히 설명하기가 힘들어 '선물'이라 했다. 내 필요에 의해서 비운 물건을 선물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것 같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해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그냥 선물이라 생각하자-
참 신기하다-
버리려 한 물건들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당근에 살포시 올려봤는데 누군가가 필요하다 했을 때, 아니면 혹시나 기부할 때가 있나 싶어 찾다가 발견했을 때마다 드는 생각. 참 신기해.
이럴 때마다 물건들을 소중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내게서 역할을 다한물건들이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으니. 소중히 써야지.
우체국에서 돌아와 열어본 욕실 선반에는
빈 공간들이 생겼다. 빈 공간 덕에 생긴 여유.
빈 공간만큼 생긴 여유와 적어진 수건의 양은 앞으로의 욕실관리에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