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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Nov 29. 2022

내 속도에 맞춰서 걷기.

저를 지나쳐주세요, 여름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멋진 어른,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은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고 남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으며 적당히 똘똘하기도 한 사람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학생 무렵쯤부터 속으로 내 머릿속의 멋진 어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런 어른이 된 것 같고 나는 아직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래서 직장을 다니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옆자리 동료는 나보다 업무를 더 잘하는 것 같은 능숙한 직원처럼 보이고, 늦게 들어온 후임은 나보다 성격 좋고 적응력도 빠른 것 같은 느낌.


자영업을 하면 조금 다를 줄 알았다. 혼자 있으면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안 하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자영업을 시작하니 오히려 내 부족한 점을 더 명확하게 알게 됐다.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 손님이 없는 날은 왜 없을까에 대한 이유를 찾으며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게 되니 내 부족한 점만 눈에 보이고, 또 손님이 많은 날은 많은 날대로 피곤해서 체력이 약한 나 자신을 깎아내리기만 한다. 왜 이렇게 부족한 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지,


얼마 전 퇴근 후 남편을 보자마자 "난 왜 이리 부족한 게 많은 거야."라고 투덜대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응. 근데 그게 왜?"


가만히 듣던 남편은 내 투덜거림에 대해 그게 뭐가 문제냐 했다. 생각이 많을 수도 있지. 남한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되는 거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왜라니? 고쳐야 하는 거 아니야? "너무 심하면 좀 고쳐야 하겠지만, 그냥 네가 그런 사람인 걸 받아들이면 돼. 난 그래도 네가 좋아."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있었어.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나정도 사람들인 거 아닐까?


"나라는 존재를 그냥 '나'로 봐주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못나 보이는 내 모습을 말해도 될 것 같은 사람. 나라는 사람을 한 가지 모습으로 규정짓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무덤덤하게 이야기해 줬던 사람."



<저를 지나쳐주세요>의 프롤로그는 이 날의 내 마음이 그대로 쓰인 글로 시작한다.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내 마음들이 문장마다 박혀 있었다. 모든 사람은 다르게 생겼고, 다른 성격을 가진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사람임을 작가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각자 자신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야 함을 여러 에피소드들에서 말을 했다.


에피소드 중 <파도론>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가 서핑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서핑의 매력이 뭐냐고 물어보자 그 친구는 하와이에서 서핑 강사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바다는 큰 파도, 작은 파도로 이루어졌어요.
내가 만약 큰 파도를 탈 수 있다고 판단되면
큰 파도를 선택해 그 파도를 즐기면 되고,
그게 힘들다고 생각되면 작은 파도를 타면 돼요.
그건 본인이 선택하는 거죠.



모든 선택을 자기가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그게 자신이 사는 인생과 닮아 있는 것 같아서 서핑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친구.


최근, 내 주변에서 나에게 다시 직장을 가는 것을 추천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평생 자영업을 해야 한다며 직장 가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그 말이 그럴싸해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근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잔잔한 파도를 선택하고 살기로 한 거였는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었다. 잔잔한 파도를 타고 느리고 천천히 가보기로 한 것이었으니, 이왕 타는 거 제대로 즐기며 서핑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책 한 권 읽는다고 책을 덮자마자 바로 내 속도를 알고 찾아가게 되지는 않는다. 아직 내 속도를 모르기 때문에 내 속도를 찾는 과정은 길고도 먼 게 너무도 당연하다. 그래도, 때로는 버거운 날들이 연속될 때 이 책에서 말해주듯이 지금 내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한 번 확인해봤으면 한다.



앞으로도 내 일상들이 버겁지는 않은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를 한 번씩 생각해보며 그렇게 내 속도에 맞게 걸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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