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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Feb 04. 2024

한 달의 휴가.

한 달 동안 뭐 하고 쉬지?



아주 우연히 한 달 동안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비록 3월이 되면 다시 일하러 나가야 하지만 기한이 정해진 휴가가 생긴 것이다. 다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쉬는 시간이 생겼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언제나 일을 쉬고 싶었지만 아직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것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편하게 일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이런 휴가가 생기다니.


이번 한 달 동안 정말 푹 쉬어봐야지!



푹 쉴 생각으로 일부러 알람을 끄고 잤는데, 

이미 출근에 적응되어 있는 몸뚱이는

자동적으로 6시 30분에 눈을 떴다.



이대로 일어나는 건 뭔가 아쉽단말이지...


다시 잠을 자려 시도를 했지만, 

시도할수록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냥 거실로 나와 

한참 동안 혼자 놀며 잠자고 있는 도하를 기다렸다.




책을 읽고 있으니 일어난 도하. 아침부터 상큼하게 웃으며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다. 원래 이렇게 등원길이 여유로운 것이었나. 


참으로 아름다운 등원길이구먼-




아이를 데려다주고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얼마 전부터 경고등이 뜬 자동차의 타이어 공기압을 넣으러 블루핸즈를 향했다.



직장 다닐 때는 9시에 문을 여는 

블루핸즈 앞에서 

8시부터 기다리며

괜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늦게 문을 연다며 투덜투덜 댔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9시 오픈이 

그리 빠르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여유로운 오늘 아침을 만끽하니,

그동안 출퇴근 시간에 맞춰진 내 바쁜 몸과 마음이

온 세상을 투덜대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너무 아침이 바빴었나 봐.




5,000원에 사라진 경고등에 괜히 신나 근처 스타벅스를 향했다.


아침을 먹으면 속이 부대껴서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오늘따라 이상하리만큼 출출해서 

커피를 시키며 샌드위치도 하나 같이 시켰다.



점심시간에 들릴 때마다 보이던 카페의 모습은 

늘 붐비고 바쁜 모습이었지만

아침의 카페는 한적하고 조용하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 커피도 자리를 잡자마자 금방 나왔고, 넓은 매장에서 내가 원하는 자리도 편하게 자리 잡을 수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집에 들어와 


청소를 하고, 버릴 물건들도 버리고,

넷플릭스를 한 바퀴 돌렸는데도

아직도 오후 3시가 안 됐더라.


왜 이리 느리게 가는 건지-

그렇게 누워서 한참을 빈둥빈둥 대다가 

빈둥대는 것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내 몸은

금방 나를 일으켰고, 도하를 데리러 가게 만들었다.



운동할 겸 걸어볼까 싶어 

어린이집까지 걸어갔는데

평소엔 삼사십 분은 걸리는 것 같더만

역시 모든 게 기분 탓이었나 보다.

20분도 안돼서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걸어가는 길에 도로 양 옆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유난히 커 보였다.


학교를 마쳤는지 학원을 가는 건지 모를 학생들의 뒷모습이 눈에 보이기도 했고,

지나가는 버스에 승객들이 가득 찬 것도 보였다.



참 오랜만이었다.

한낮의 동네의 풍경을, 

사람들의 모습을 내 눈에 담은 건.




하원을 한 도하와 손을 잡고 천천히 동네를 걸어

도착한 집에서 마주 보고 앉아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검은색 줄만 긋는 도하에게 이게 뭐냐 물어보니

이건 타요고, 이건 아기상어고, 이건 할머니야.

라고 대답한다.


내 눈엔 무엇인지 모를 그림을

무언가를 상상하며 그렸다는 아이에게

잘 그렸네라고 칭찬하며 내 그림을 바라봤는데,

내 그림이 더 뭔지 모르겠다.


어릴 때 미술을 좀 했어야 했나...






창밖을 보니 

뭐 없었던 오늘이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었다.




한 달간의 휴가.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또 지나고 나면 눈 깜짝할 사이 끝날 시간이겠지만

어쨌든 한 달은 나에게 귀중한 시간이다.


2월 한 달 동안 푹 쉬며 많은 것을 비워보고 싶다.


꽉 채워진 스케줄들도 비워보고

몇 시까진 뭘 꼭 했어야 하는 나의 조급함도 비워보고

늦게까지 기다릴 아이 걱정에 뛰어가던 하원시간도

여유롭고 느긋하게 걸어보며


많은 것을 비우고 

또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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