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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몰랐던 나, 대기업과 경쟁에서 도망쳤다.

스타트업 생존계획서

2달 동안 회사 내 모든 직원이 120% 풀가동됐다. 힘들었지만 분위기는 희망으로 가득 찼고, 주변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쾌쾌한 사무실은 모니터의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키보드 타건 소리와 팬이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 같았다. 


천재 개발자의 활약에 힘입어 2달 만에 빠르게 서비스를 출시한 지 한 달, 광고비 없이 사용자 1000명까지 달성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국민은행과 기업은행이 우리와 똑같은 서비스를 연달아 출시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도망갔다. 빠르게 서비스 출시를 했던 것처럼





비법은 바로 '혁신쌓기'

대기업들과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는 방법을 찾던 나는 <언카피어블>이란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흔히들 혁신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한 하나의 획기적인 아이템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템 자체는 혁신이 아니다. 대중에게 보이는 그 거창한 '대혁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쌓아둔 '소혁신'들이 쌓여서 다양한 형태로 결합한 결과물이다. 앞으로 이 소혁신을 강점이라고 부르겠다.  소혁신들의 결합이 선행되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티비에 나오는 혁신이 창발 할 수 없다.


사우스웨스트의 설립자 허브 켈러허는 말했다.

다들 스무 가지 중 하나만 따라 하고는 '이렇게 하면 제2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거든. 중요한 건 전체적인 조합인데 말이지.

<콘텐츠의 미래>를 집필한 바라트 아난드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진정한 진입장벽은 제품, 기능, 소비자 연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관점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강점들의 연결 혹은 조합을 강조하는 데에서 공통점이 있다. 



언카피어블의 저자가 설립한 회사 '스퀘어'의 사례가 아주 인상적이다. 아마존이 스퀘어를 모방한 다음 30%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다. 이 사실을 안 직원들은 그 어느 때 보다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스퀘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가격은 경쟁사보다 낮은 수준이었고, 전 직원이 100%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에 말려들었다면 더욱 승산은 없었다. 아마존보다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아마존은 물러갔다. 스퀘어를 모방했지만, 모든 소혁신 요소들을 따라 할 순 없었다. 아마존이 내세운 저렴한 가격은 수많은 소혁신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스퀘어의 단순한 디자인, 무료가입과 하드웨어 무료 제공, 의무약정 없음, 빠른 대금 지급, 비용절감을 위한 실시간 고객 서비스 없음, 하드웨어 패키지 등 다양한 소혁신 요소들이 있었다. 이 중 하나만 빠트려도 아마존은 스퀘어를 이길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아이템 그 자체가 아닌 '혁신들의 조합'이 경쟁력이다. 그 조합 중 하나의 혁신만 빠져도 경쟁력은 와르르 무너진다. 젠가처럼 말이다. 쌓여있는 혁신은 하나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외부에서 보면 1개의 장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혁신 블록 하나 혹은 몇 개만 모방하는 것으론 이길 수 없다.


혁신 요소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모방해가면 되는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1개 혁신을 따라 할 가능성이 80%라면, 5개 혁신을 따라 할 가능성은 33%로 확 떨어진다. 혁신의 개수가 많아질 수록 확률은 빠르게 떨어진다. 이것도 지나치게 단순화한 계산이다. 혁신은 독립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가 동시에 쏟아질 때 발생하는 영향력은 단순한 그것들의 합 그 이상이다. 상호 연관성까지 더해져 복잡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당시 TV광고까지 하는 은행들은 보고 패닉에 빠졌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만약 그때 도망가지 않았다면 우리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도 요즘 카카오와 네이버가 모든 서비스 분야를 다 잡아먹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위주 경제 생태계에선 대기업이란 이름만 들어도 무기력해질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 패닉에 빠지지 말고, 주의 초점을 회사 내부로 돌려보자. 과연 우리 회사가 쌓아 올린 혁신은 몇 개나 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든든한 성벽이 되어 줄 것인가? 무조건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참고로, 그 은행들의 서비스는 요즘 이름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 이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누구일까? 당시 우리보다 1년 정도 먼저 시작한 스타트업이 굳건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긴메이트라는 기업으로 정부지원사업 큐레이션과 팀빌딩, 온오프라인 행사 개최 등 여러 강점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회사를 지켜주는 든든한 병사가 되어 준 것 같다.



대구 경북 기반 스타트업 텐투고

국내 최초 프라이스 엔지니어 이재홍

가격전략 컨설팅 & 퍼포먼스 마케팅 & 시장조사

e. 10togo@daum.net

https://thepriceengine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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