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이름
“씨옹?”
느닷없는 호명이, 머리를 떨구며 졸다 깨기를 반복하던 대기실의 새벽 정적을 흔들었다. 아무도 답이 없자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차트를 들여다보더니, 이번엔 틀림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부른다.
“씨엉?”
열 시간을 넘게 앉아 있었는데도 아직도 내 차례는 오리무중이다. 짜증스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누구 순서지? 베트남 사람인가, 태국 사람인가... 무에타이 선수 이름 같다. 그렇게 비몽사몽 다시 눈이 감기려던 찰나—
“씨엉 쮠 챙?”
윽! 나로구나. 혹여 다음 사람으로 넘어갈까 싶어 벌떡 일어나 손을 들었다.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기다리다보면, 먼 나라에서 온 낯선 이름이 어색하게 불리고, 부르는 이도 불리는 이도 멋쩍어하는 풍경을 종종 본다. 대체로 유쾌하게 넘어가지만, 이민 초기 늘 긴장해 있던 나는 내 이름이 몇 번이나 불려도 제대로 듣지 못하곤 했다.
내 이름은 장 성진이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흔히 붙여주던, 평범하고 무난한 이름이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아무 고민 없이 ’Seong Jin Chang’으로 여권을 만들었고, 그렇게 내 Legal Name이 되었다. 편하게 존이나 피터 같은 영어 이름을 새로 만들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이름에 정체성이 묻어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이 이름을 고집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입술과 혀에 신경을 집중해도 내 이름을 결국 “씨엉 쮠 챙” 쯤으로 힘겹게 발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식 관성대로 이름을 두 글자로 띄어 쓴 탓에, 사람들은 내 First name을 ‘Seong’으로, ‘Jin’은 여기선 Middle Name 쯤으로 여긴다. 나는 Last Name으로 불리는 프로페서나 닥터가 아니니, 자연스레 ‘씨옹’이나 ‘씨엉’ 사이 어딘가에서 불린다.
이렇게나 이국적으로 들리는 내 이름을, 한국에서는 개성 없단 이유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시절을 돌아봐도 한 명씩은 꼭 있었고 가끔 두 명씩 있던 흔한 이름. 인사담당으로 일할 땐 우리끼리 ‘마름’이니 ‘뒷방아전’이니 하며 자조하곤 했는데,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푸념한 적도 많았다.
항렬을 따르자면 내 이름은 ‘장 X구’가 되었어야 했다. 어느날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왜 제 이름을 항렬도 안따르고 지으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뚱하게 ‘니 애비한테 물어봐라’ 하셨다. 함께 듣고 있던 아버지 얼굴을 보고,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할아버지 표정에서, 당신에게 손자의 작명을 맡기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괘씸함이 읽혔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영국 여왕에게 신민의 선서를 하고서 “씨옹 쮠 챙”으로 불리게 된 내 이름의 뜻과 연유를, 지금 와서 들추어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내 생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는 성탄절에 태어났다. ‘축생일’ 대신 언제나 ‘메리크리스마스’가 쓰인 케익을 받았다는 진부한 얘기는 제쳐두고, 이름과 성탄절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면 이렇다. 한 해 먼저 태어난 누나 이름을 따라 ‘진(眞)’을 돌림자로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름에 잘 쓰지 않는 ‘성인 聖’자를 쓴 것은 내가 성탄절에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당시 동막엔 TV도, 교회도 없었다. 더군다나 음력을 사용하던 분들이라, 그 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가끔 ‘아들이 목사가 되었더라면.. ‘ 하고 아쉬워하시는 어머니도, 당시엔 기독교인이 아니셨다.
“Just call me Jin”
일언이폐지하고 어찌 되었든 ‘씨엉’인지 ‘씨옹’인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나는 친절하게도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Jin’으로 부르는 것을 허락했다. 십 수년이 흘러 나는 그렇게 ‘Jin’이 되었다. 내 귀와 뇌는 이제,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었다는 듯 이 이름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손님들도 내 이름을 쉽게 불러주고 기꺼이 기억해주었다(BTS여 영원하라!).
Jin Chang. 어찌보면 중국계 이민자로 보이는 이 이름은 다행히도 아시안 푸드 비즈니스라는 나의 커리어와 대략 '얼라인'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가 마음을 쏟고 있는 부캐 ‘로키산 판화가’와는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