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목단(木丹), 작약, Peony

부귀가 태평양을 건너 Honour & Wealth로

by Christmas Gin

한국을 떠나 오기 얼마 전, 어머니께서 오래전 지인에게 받았다며 그림 한 장을 내어 주셨다.

두어 번 접힌 한지를 펼치자 탐스러운 모란이 그려진 한국화가 나타났다.

국전에 입선한 화가가 그렸다는데, 장롱 속에서 십수 년을 보냈다기엔 꽃잎의 붉은 기운이 놀랍도록 선명했다.


하지만 모란(富貴)과 함께 있어야 할 목련(玉), 해당화(堂)가 보이지 않는데도, 부귀옥당도(富貴玉堂圖)라 제목을 붙여 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벌 몇 마리를 그려 넣은 걸 보고 ‘모란에는 향이 없어 나비와 벌을 함께 그리면 독도법에 맞지 않는다’ 던 말이 떠올랐다. 그 순간 이 그림이 어딘가 어설픈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엄마, 모란이 원래 부귀를 상징해서 ‘부귀화’라고도 한대요. 그냥 표구해서 화사하게 거실에 걸어 두세요”하고 말았다.


그럴까? 어머니께서 거두어들이는 기색을 내비치셨다. 그러자 평소 탐스럽고 화려한 작약을 좋아하던 와이프는 '한 번 준 것을 다시 가져가는 법이 없다'며 얼른 챙겨 넣었다.




본가 마당에도 모란이 두어 그루 있었다. 꽃나무를 유난히 좋아하고 잘 가꾸던 어머니는 죽어가는 나무도 기어이 꽃을 피워 내었다. 봄이면 ‘목단(木丹)이 작년보다 더 화려하고 탐스럽다’며 좋아하셨다. 자연스러운 활음조를 거부하고 굳이 ‘목단’이라 불렀던 어머니 때문인지, 가지에 새순이 돋을 무렵이면 나 역시 ‘곧 목단을 보겠구나’ 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여긴 모란 대신 작약이다. 모란은 나무라 두어 ‘그루’고 작약은 풀이라 서너 ‘포기’라고 세야 한다. 하지만 이파리와 꽃만 보면 구분이 어렵다.


봄바람이 캘거리의 지루한 겨울을 밀어낼 때가 되면, 집집마다 희고 붉은 작약이 핀다. 목이 꺾일 듯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것은 흔히 ‘함박꽃’이라 부르는 작약이고, 응암동 옛 집의 모란처럼 기품 있는 붉은 꽃잎을 가진 품종도 있다.


캐나다에 온 뒤로 마당이 있는 집을 사고, 앞마당 화단을 정돈하여 새 흙을 덮었다. 작약 대여섯 뿌리를 사다가 심었다. 말라버린 괴근이라 싹이 나고 꽃을 피우는 데 한 두해는 걸릴 터였다. 꽃을 볼 때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하던 차에 알고 지내던 베트남 이민자 집에서 작약 서너 포기를 얻어와 그 옆에 심었다. 그 봄에는 여기서 꽃을 보리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원래 흙 째 심었음에도 그 해엔 맥없는 이파리만 몇 개 내비치다가 시들어 버렸다. 괴근을 심은 작약은 이듬해부터 풍성한 꽃을 피워내었지만 이식한 작약은 몇 해가 지나도록 꽃을 내지 않고 결국 얄포름한 이파리만으로 무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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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ny in Cloche' 2024 Linocut 9X12 inch



모란처럼 작약도 부귀의 상징이다. 옛 사람들은 부귀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란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 나 역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댁내에도 소박하나마 부귀와 평안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약을 판화로 찍었다.


‘Cloche’는 종(또는 모자) 모양의 유리 덮개인데, 그 자체로도 우아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마음이 가는 물건에 씌우면 변색이나 먼지로부터 보호될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기품있는 오브제로 바뀌는 마법을 부린다. 우리 가족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품이나 기념물 등이 있으면 이렇게 클로셰를 씌워 장식해 놓곤 한다.


짧은 봄,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새 져버리는 아쉬운 마음, 그리고 이식한 뒤 꽃은 못피웠지만 이파리만으로도 꾸역꾸역 살아내는 안타까운 마음을 클로셰 안에 넣어 보았다. 응암동 마당에 있던, 붉은 모란의 추억이 내 마음속에서 빛 바래지 않고 오래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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