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Army Chorus의 추억
2016년 성탄절 아침, TV 뉴스는 러시아 소치에서 이륙한 뒤 흑해로 추락한 Tu-154 군용기에 대한 보도를 전하고 있었다. 동일 기종이라는 비행기 자료 화면 아래로 “Alexandrov Ensemble aka. Red Army Chorus”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레드 아미 코러스로도 알려진)라는 자막이 무심하게 흘러갔다.
순간, 한동안 잊고 지낸 옛 애인의 부고를 들은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레드 아미 코러스(Red Army Chorus)’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러시아군 공식 합창단이다. 1928년 창단 이후 전세계에 러시아 민요를 알리며 명성을 떨치던 그들은 시리아에 파병된 자국군을 위한 위문공연 길에 오른 참이었다. 그러나 이 사고로 합창단 정예 멤버64명 전원은, 수많은 레전드 음반만을 남겨둔 채 한 순간에 차가운 흑해의 물결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기막힌 우연으로 화를 면한 이들도 있었다.
공연 때마다 최고의 앙코르 곡으로 사랑받던 <칼린카>의 간판 솔리스트, 바딤 아나니예프는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낸 덕분에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 <백학>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요시프 코브존 역시 건강 문제로 동행을 고사해 목숨을 건졌다. 또 다른 단원 로만 발루토프는 탑승 수속 중 여권 만료 사실이 발견되는 바람에 사고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단원을 잃은 합창단이,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요?”
리포터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이 질문이 남긴 아득한 파문 속에, 나는 그보다 스무 해 전의 어느 여름날 기억 속으로 가라 앉고 있었다.
“적군(赤軍)이면.. 붉은 군대?”
1996년 여름 김포공항.
세관원은 중국에서 막 돌아온 연수생 무리 중, 하필이면 나를 지목해 검색대에 놓인 가방을 열게 했다. 옷가지와 책들을 무표정하게 뒤적이던 그가 LP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앨범 재킷의 제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까와는 달리 이죽거리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그가 들어 보인 레코드판은 딱 봐도 불온했다. 낫과 망치가 그려진 붉은 깃발, 그 아래로 도열한 소련 군복 차림의 군인들. 그리고 그 위에는 ‘赤軍合唱團(적군합창단)’이라는 한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북경 신화서점에 들렀을 때 발견한 물건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라이선스로 발매된 음반이었지만, 중국판이라는 점이 기념이 될까 싶어 반가운 마음에 사 온 것이었다.
한자이긴 했어도 엄연히 ‘합창단’이라고 적혀 있으니 웬만하면 클래식 음반으로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세관원의 심기를 건드린 건 ‘적군(赤軍)’이라는 두 글자와 지나치게 ‘빨갱이’스러운 앨범 재킷의 디자인임이 분명했다.
중학교 때, 우리 집에 처음으로 전축이 들어왔다. 앰프와 플레이어 그리고 스피커에 방송국에서 발간한 두 권짜리 클래식 전집 테이프 세트가 딸려왔는데, 이것이 나의 클래식 입문서가 되었다. 그중 유독 내 귀를 사로잡은 건 돈 코자크(Don Cossack) 합창단이 부르는 러시아 민요 ‘볼가강의 뱃노래’였다.
합창 명문 숭실고등학교에 진학해 운 좋게 남성합창단원이 되면서 나의 ‘러시안 포크 크러시(Russian Folk Crush)’는 본격화되었다. 우리 합창단 레퍼토리에도 러시아 민요가 몇 곡 있었지만, 나는 성에 차지 않아 ‘카츄샤’나 ‘칼린카’, ‘저녁종’ 같은 곡들을 따로 찾아 듣기 시작했다.
변성기를 막 지난 어린 나이였음에도, 러시아 합창단이 뿜어내는 남성 합창 특유의 베이스는 마치 나를 자작나무숲 서늘한 심연 속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적군(赤軍)에 패해 고향을 등진 백군(白軍, White Army) 출신들로 구성된 돈 코자크 합창단의 노래엔 거칠고 투박한, 울음소리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반면, 적군(Red Army)은 달랐다. 그들의 소리는 정교했고, 무엇보다 압도적인 힘이 있었다. 같은 러시아 민요라도 돈 코자크 합창단의 노래에선 어떤 패잔병의 한(恨) 같은 것이 느껴졌다면, 레드 아미 코러스의 음악은 승전가같았다. 처음엔 돈 코자크의 야성과 슬픈 아름다움에 끌렸지만, 곧 레드아미코러스의 웅장하고 정밀한 화음에도 빠져들어 갔다.
쇼스타코비치조차 ‘소련놈’이라서 백안시하던, 소위 이념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80년대 후반이었다. 이윽고 돈 코자크 합창단, 모스크바 방송합창단, 레드아미코러스 등의 음반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용돈을 아껴 하나씩 사모았다.
87년, 고3이 되어 합창단 활동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함께 볼쇼이 합창단같은 진짜 ‘소련’ 예술단들이 한국 땅을 밟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입시에 목을 매던 그 시간에 나는, 그들의 공연을 쫒아 다니며 자칭 ‘귀명창’이 되었다. 소련이 무너진 91년, 대학을 옮기느라 다시 입시공부를 해야 했던 때조차 나는 부모님 몰래 세종문화회관에서 ‘Red Army Chorus’의 내한공연을 직관했다.
무대 조명 아래, 붉고 푸른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토해내는 그 혁명가풍의 러시아민요. 아무도 모르게 혼자 그 웅장한 소리 속에 파묻혀 있을 때면, 세상 그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Red Army Chorus는 나만의 은밀한 ‘드보크(DVOK)’였다.
“그거 레드아미코러스라고 유명한 합창단이에요. 서소문레코드에서도 팔아요”
수상한 혐의를 포착한 대공 형사의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던 세관원에게, 나는 시대가 이미 오래 전에 변했고 클래식 음반이니 괜찮은거 아니냐고 호기롭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또 다른 책을 집어들고 펼치자 그 안에서 우표 전지가 몇 장인가 나왔는데, 순간 나는 그자리에 얼어붙어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얼빈공업대학에서 만나 친해진 북한 유학생 L에게서 빼앗다시피 받아온, 김일성의 현지지도 모습을 조선화 풍으로 그린 기념 우표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뭔가 사달이 나겠구나. 세관원은 아무말도 못하고 사색이 된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LP와 우표가 담긴 책을 가방에 도로 쑤셔 넣었다. 한참 훈계를 들었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마지막 말과 등줄기에 흐르던 식은땀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에필로그: 다시 부르는 칼린카
2016년 성탄절의 비극은 이 유서 깊은 합창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은 다행히 아픔을 딛고 재건되었다. 레드 아미 코러스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단원을 뽑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분 넘게 호흡을 끊지 않고 <칼린카>의 하이라이트를 뽑아 내던 ‘미스터 칼린카’ 아나니에프도 언젠가 다시 무대 위에서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R.I.P.
그 날 희생된 64명의 단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