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도에서 조급하게 끓는 물」
8천만년 전 즈음 태평양판이 북아메리카판 아래로 파고 들며 거대한 지각을 들어올렸다. 그 때 로키산맥도 덩달아 솟아올랐다. 서쪽 태평양에서부터 밀어닥친 그 힘이 얼마나 거대했던지, 한반도만한 산맥을 솟구쳐 올리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산의 반대쪽으로는 그 만큼의 퇴적층을 켜켜이 쌓아 놓았다.
수천 년 동안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곳에 정착한 이들에게, 로키는 격렬했던 충돌에너지를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가스로 게워내어 대자연과 함께 물려주었다. 높은 산이 파놓은 깊은 골은, 녹은 눈을 채워 이내 넓고 푸른 호수가 되었다. 로키가 융기하자 주름지듯 접혀버린 땅들은 평지가 될 때까지 동쪽으로 가없이 달린다. 이 풋힐(Foothill)지대가 점점 낮아지고 너울너울 느리게 펼쳐질 즈음이면 이윽고 캘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캘거리에서는 물이 96도에서 끓는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 게 자연법칙 아니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상식처럼 이것 역시 전제가 빠진, 반쪽짜리 상식이라고 말해야겠다.
생략된 전제를 불러오면, 물의 끓는 점은 기압에 따라 달라지고 기압은 고도에 따라 변한다. 고도가 높아져 기압이 낮아지면 물은 낮은 온도에서 끓고만다. 섭씨온도 (Celsius) 자체가 원래 '1기압(해수면 기압)에서 물이 어는점을 0도, 끓는점을 100도'로 정의하여 만든 체계이므로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물이 끓는 이곳에서는 쓰면 안되는 체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삶고 끓여 손님에게 음식을 내주는 상업주방에선 화씨를 쓴다.
각설하고, 로키산을 지척에 둔 캘거리의 평균 해발고도는 약 1,000m로, 이 높이에서는 기압이 0.88로 낮아 물이 100도보다 낮은 96도에서 조급하게 끓기 시작한다.
물이 조금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는 것과 공기중 산소밀도가 달라서 비행기가 양력을 얻으려면 활주로를 좀 더 달려야 한다는 사실 외엔, 사실 해발 천 미터라는 높이가, 당장 극적인 변화를 느낄만큼 대단한 고도는 아니다. 호흡기가 약하거나 노약자에겐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와이프는 당장에 천식을 얻었는데, 해수면 고도에 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민을 오게 되면 왕왕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특별할 게 없는 높이이다. 서울서도 마실가듯 쉬이 오르던 북한산이나 관악산 정상도 칠팔 백 미터는 족히 되었으니까.
아무튼 해수면과 높이가 거의 같은 서울을 떠날 때까지,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에 어떤 의문도 가져보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 사는 40대 기혼 대졸 직장인 남성’인 인구 데모그라피상 표준 한국인은 태평양을 건너 로키 고산지대로 들어오고 나서야 내가 생각하는 표준과 상식(Common Sense)이란 것이 여기선 uncommon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선 의심없이 옳다라고 생각해 왔던 많은 것들에 대한 답이 달라진다. 정답은 시와 때를 달리하여 매순간 달라지거나 찾기 어렵기도 한다. 라면조차, 물이 팔팔 끓는다고 조급하게 집어 넣으면 안된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면과 스프를 넣고 4분 30초 더 끓이라는 신라면의 조리법을 성실하게 지키면 지나치게 꼬들꼬들한 면을 맛보게 될 수 있다. 밥도 마찬가지로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다행히 세계 최고의 쿠쿠 압력밥솥은, 한라산이나 노고단에서처럼 설익은 밥을 지어내지는 않는다.
상태가 변하기 시작하는 임계점이 이처럼 여기선 다를 수 있다. 조급하게 일찍 끓는 물처럼 나의 상식도, 세계관이나 인생관도 삶의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기준선도 물론 낮아진다. 물론, 10톤의 무게로 나를 짓눌렀던 서울의 대기압이 1할이나 줄었지만 그렇다고 내 어깨를 누르는 인생의 무게가 같은 정도로 가벼워 진 것은 아니다. 어깨위를 누르는 이 무게는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다.
오프닝까지는 한시간이 더 남았지만 화씨 300도까지 올라가는 철판그릴은 이미 후끈 달아 올랐다. 야키소바용 물도 오래전부터 끓고 있다. All set!
로키와 어머니 대자연을 호기롭게 누비는 이야기만으로 연재를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1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좌충우돌 ‘정착 중’인 생활 이민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캘거리에서 산다는 것은, 치솟아 오른 저 로키의 비현실과, 끓는점이 4도나 낮아져 속까지 익히려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현실 사이를 오가는 줄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