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개미구멍#14

이태원 참사, 인싸와 아싸의 계급론에 대하여

by 영원한 은하수

10월 29일 토요일은 하루 종일 삐친 상태였다. 근무하는 곳이 교육기관인지가 전날 어쩔 수 없이 독감 백신을 맞았는데 하필 부작용으로 열이 나버렸다. 드디어 ‘인싸’의 상징이라는 할로윈 이태원을 가보겠다는 들 뜬 마음이었으나 술 약속을 취소해 버렸다.


토요일 저녁은 할로윈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주말 저녁이었다. 나도 “인싸”가 되어보나 했지만 “아싸” 근본 어디 안간다며 맥주를 샀고 혼자 영화를 보면서 저녁시간을 때웠다. 처음 핸드폰으로 교통통제 알람이 울렸을 때만 해도 이태원에서 단순 교통사고가 난 줄 알았다. 사람 북적거리는 헤밀턴 호텔 삼거리에서 사고가 나서 교통마비라고... 내심 속으로 쌤통이라 생각했다. 나는 가지 못하는 곳에 ‘인싸’들은 광란의 밤을 보낸다 생각하니 배알이 꼴렸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각, 게임에서 유저들끼리 이태원에서 50명이 심정지가 와서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급하게 인터넷 커뮤니티를 검색하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직접 겪을 일이 아닌데도 시시각각 올라오는 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머리가 멍했다. 영화와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뭣에 홀린 사람처럼 사건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을 자게 되었고 엄마는 새벽 6시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이태원 참사에 국가애도기간이 선포 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망자를 조롱하는 글이 올라오고 국가애도기간에 대해 ‘강요된 슬픔’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같은 인간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왜 비인간적인 행위로 티배깅(Tea-bagging)을 하는지 이해할 것도 같다. 결단코 그들의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그러는지 심정에 대해 분석하고 싶은 의도일 뿐이다.


SNS 시대를 살고 있는 소위 MZ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인증’하여 ‘인정’ 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핸드폰 하나면 영상으로 뭐든지 기록할 수 있는 오늘날은 그 옛날 “썰”로 사발 풀던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인싸’와 ‘아싸’는 MBTI에서 ‘E’냐 ‘I’냐의 성향 차이가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 할 문화를 향락할 수 있는 ‘인싸’와 쉽게 공감하기 힘든, 서브컬처 문화를 즐기는 ‘아싸’라는 계급론이다. ‘인싸’들의 인스타그램. 틱톡 등의 SNS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업로드 하면서 ‘좋아요’로 자신의 ‘인싸력’을 증명하는 동안 ‘아싸’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익명에 숨어 자신의 ‘아싸력’을 자조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할로윈-이태원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원래 서구에서 할로윈을 어떻게 즐겼던 간에 한국에서 할로윈은 “사람들이 코스튬을 입고 술을 마시며 유흥을 즐기는 문화”로 성장하게 되었다. 할로윈을 검색해 나오는 사진을 보면 미남미녀들의 코스튬플레이 사진들이다. 그런데 원래 코스튬이라는 것은 서브컬처의 대표적인 놀이었다. 그런데 그 코스튬 플레이를 할로윈 이태원에서 “인싸”들이 즐기고 있으니, “아싸”입장에서는 “빼앗긴 아싸”라는 말이 유행할 수밖에 없었다.


할로윈-이태원은 그야말로 “인싸”들만 참여가 가능한 그들만의 문화였다. 선남선녀들이 술과 음악을 즐기며 한데 어울리는 것 자체가 “아싸”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행위였다. 할로윈-인태원에서 “인싸”들은 내가 못하는 것을 향락하고 안 좋은 시선을 참아가며 즐겼던 코스튬 플레이를 당당하게 즐겼다. 그러니 이를 바라보는 시기, 질투, 열등감의 발로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조롱이 끊이지 않는다. “아싸”들 입장에서 이번 참사는 기득권인 “인싸”가 본인들만의 특권을 누리다 사망한 사건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재난지원금까지 지급하고 국가애도기간까지 선포 되었으니 “가진 자들이 유난이다.”라고 안 좋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성인이라면 적어도 해서 안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강요된 슬픔’이라는 비판에 그 의견도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이 되지만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때론 침묵할 때도 필요한 법이다. 전 국민이 통일된 감정으로 애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참사가 벌어진지 만 24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할로윈 파티라고 SNS에 사진을 올리는 “인싸”들이나 잘 죽었다고 조롱하는 “아싸”들이나... 어느 쪽이든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비정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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