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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은하수 May 16. 2023

우주의 개미구멍#15

펑범한 사람은 반지하에 살지 않아요. 

 일요일 새벽이었다. ‘꿀렁’ 소리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자각하며 눈을 떴다. 소리가 나는 곳을 추적하니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서 물이 역류하기 시작하면서 방바닥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구축 빌라 반지하 층은 항상 물을 지상으로 퍼 올리는 펌프에 의존해야 했다. 그 펌프가 고장 났으니 하수구가 역류할 수밖에 없었다.   

 축축한 하수구 비린내가 집을 덮쳤다. 처음도 아니라며 의연하게 바닥을 닦고 급하게 물을 사용하지 말라고 위층에 올라가서 문을 두들겼다. 어차피 수리하면 되는 거니까 씻지 않고 화장실 이용만 밖에서 하면 된다. 오늘만 참아야지.


시발, 이게 내 수준이구나.


 하지만 아무리 겪어도 의연해지지가 않는다. 마지막 글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시작했고 다니던 곳에서도 IRB 전문직으로 승진이 예정되었다. 체지방 18%까지 살을 뺐고 마라톤 10km 종목을 2회 나가서 각각 51분 49분 기록을 세웠으며 나 좋다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솔직하게 이 정도면 이제 남들만큼, 즉 중간은 되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하수구가 역류하는 집에 살면서 스스로가 어떻게 중간이라고 자위할 수 있을까? 남들만큼 살게 되었다는 여유에 안일했다. 여전히 나는 지상을 허락받지 못한 밑바닥 인생임을 인정해야 했다. 


 반려자를 찾아다니는 뻘짓을 그만두었다. 모든 모임 단톡방을 탈퇴하고 인스타그램을 닫았다. 최대한 스스로를 고독하고 불행한 존재로 만들어 자각하기로 했다. 내게 성공은 지금 내게 남을 것을 지켜내는 힘을 뜻하고 그 성공을 위해서 계속 자학해야 한다. 반드시 전임교수가 되어야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솔직히 전임 교수가 못 되면 평생 불행할 것 같다) 지상 1층이라도 올라갈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어야 남들만큼 살아가는 것이다. 


 30대 중반이면 억울하기도 늙은 나이. 남들이 0원에서 시작할 때, 나는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고 칭얼거려봤자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 오히려 왜 그 나이까지 현실자각을 못했느냐며 혼나기만 할 뿐이다. 주제를 모르고 인문계 박사를 나온 내 선택의 문제지만 스스로 뭐 대단한 인간이 된 것 마냥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게 되었다고 착각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게 된 계기였다. 


 하수구 냄새 때문인지, 불안장애가 다시 온 건지 계속 잠에서 깼다. 다시 말수가 적어지고 반쯤 눈이 풀려있으니 사람들이 자다왔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닥인생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럴 시간에 더 노력해야 평범한 사람 흉내라도 낼 수 있으니까. 노력하면 언젠가 나도 평범해 질 수 있겠지. 그런데 솔직히 ‘평범’의 허들이 너무 높다고 말하면 엄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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