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평탄하게 살 줄 알았다.
30대 초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남들이 보기에 꽤 좋았다.
서울에서 꽤 알려진 대학을 졸업했고, 어렵지 않게 대기업에 들어갔다.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치열하기만 한 캠퍼스라는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4년간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외국어 하나쯤 씹어먹지 않아도,
괜찮은 대학, 괜찮은 학과 졸업생들은 졸업 전에 대기업 입사가 결정되곤 했다.
취직을 할지, 대학원을 갈지 잠시의 고민이 있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에겐 취직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의 IT 계열사에 1년 정도 다니다가,
당시 연봉이 높기도 하고 브랜드가 HOT했던 이동통신사로 이직했다.
꽤 괜찮은 연봉을 받았고,
꽤 좋은 선배들을 만나 편한 직장생활을 했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일을 빼는 법도 없었고,
새로운 일에 적응도 잘했고,
자기주장도 강한 편이어서 눈에 띄었고,
회사 행사에 항상 적극적이었다.
그러니 매니저들은 나의 승진을 의심하지 않았고,
과장을 달았을 때쯤 남자가 절대 다수인 조직 속에서 여자라는 희귀성을 이용하면 임원을 다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때의 나는 꽤 괜찮은 회사원이었고, 자기 계발도 소홀하지 않았으니 앞으로 내 인생은 평탄할 것이라는 것에 별 의심이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입학,
졸업과 함께 대기업 입사라는 달콤한 결과물,
한 달간의 합숙연수를 통해 세뇌받은 애사심과 동기들과의 의기투합,
신입사원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업무에 대한 적응,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처음 경험하는 월급에 취해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 곧 현타가 시작된다.
내가 평안히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하며 잘 먹고 잘 살 거란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부모 세대에 그리던 평생직장, 대기업에 들어가면 노후가 편안했던 시절은 이미 끝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현실 세상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주어진 상황에 열심히 살면서,
꿈과 희망에 도취된 꼬꼬마 이상주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