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부는 바람 02
작년 여름, 고향 제주행을 택해 ‘빽도(Back-do)’인이 되었다. 『나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라는 책이 적잖이 영향을 끼쳤다. 책 속의 일본 청년들은 사회구조에 의문을 던지며 도시가 아닌 ‘아마’라는 작은 섬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일본 사회의 미래를 보았고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실행하는 실천가가 된다. 한참 유럽을 돌고 돌아 대도시, 수도 중심의 사회구조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찰나였다. 유럽에서 각 지역들이 저마다의 색채를 띠며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지역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제주, 마을에서 미래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제주는 국제관광자유도시였다. 수만 여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섬. 그래서 제주의 미래는 외부의 손에 달려있었다.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더디어질 때 휘청거렸고, 외부 자본에 의해 제주의 땅은 개발되고 점차 사라졌다. 외부의 힘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미래가 아니다. 지역주민의 힘으로 지역주민과 지역을 이롭게 하는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따라서 관광보다는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자원과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에서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제주의 문화가 보존되고 잘 가꾸어질 때 지속 가능한 관광도 가능하다. 1차 산업은 지역주민들을 키워낸 밥이며 앞으로도 자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요소다. 또한, 1차 산업의 생산물들이 관광상품이 되어 관광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성도 가진다. 결국, 제주가 단지 5년이 아닌 50년, 500년을 바라본다면 마을의 생업과 생업에서 파급된 문화자원에서 관광의 섬도 시작될 수 있다.
따라서 마을로 갔다. 제주사회적기업경영연구원의 <청춘다리> 사업을 신청해 마을과 마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마을기업에 대해 알고자 했다. <청춘다리> 사업은 마을, 마을기업과 청년들 간의 다리를 놓아주자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청년들이 마을과 마을기업을 방문해 마을자원과 마을기업에 대해서 알고 앞으로 마을기업이 제주 지역민, 외부인과 연결될 수 있는 다리를 모색한다.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무릉외갓집’으로 다리를 놓았다. 무릉외갓집은 무릉리의 영농조합법인으로서 마을의 1차 산업을 기반으로 창업을 한 사례다. 무릉외갓집은 마을의 농산물(생산자)과 소비자 간의 거리를 좁히고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유통과정에서 유통업체가 큰 이익을 취하고 생산자, 즉 농부들은 제 값도 못 받는 식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조합원이 된다. 그들이 논의를 통해 가격을 설정할 수 있고, 계약재배를 통해 1년 내내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직접 꾸러미 상품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유통함으로써 소비자는 신선한 농산물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외부 유통업체에게 나도 모르게 막대한 이익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아닌, 지역과 마을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로서 마을이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무릉외갓집은 이러한 구조로 꾸러미사업, 단일상품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꾸러미는 ‘From Jeju to your Kitchen’을 표방하며 매달 제철 과일, 채소, 수산물 등으로 채워진 박스를 소비자들의 집 앞까지 배달하는 사업이다. 소비자는 간편하게 제주의 특산물, 친환경 로컬푸드를 집에서 체험할 수 있다. 이는 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다.
무릉외갓집을 방문하면서 마을의 농장도 둘러보았다. 무릉2리의 포도밭을 담당하고 계신 농부 한 분도 만났다. 이제까지 ‘포도’라 부르며 별생각 없이 먹었던 포도들이 다 같은 게 아니었다. 농부가 열심히 연구해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품종을 생산한다. 무릉2리의 포도밭에는 거봉, 고처, 자옥 등이 자라고 있다. 고처의 포도 방울은 순정만화 주인공의 눈 크기만 하다. 또한, 민트와 같은 풀이 강한 향을 풍기기 때문에 민트 추출액은 농약 대신 해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마을 농가를 방문하면 민트가 무성히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생한 이야기를 농부 아버님을 통해 들으며,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도시에만 있었던 나에게 마을이 조금씩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제 포도를 보면 무릉이 생각날 것이고 포도알 크기도 허투루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청년이 마을로 간다. 앞으로도 마을을 탐방해 1차 산업을 이해하고 지금 소비하고 있는 먹거리가 어떻게 왔는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청춘다리> 사업처럼 관과 민간 차원에서 청년들과 마을을 잇는 사업 진행을 지속하여 그들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을자원을 알고 그것을 잘 소비하는 것이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을의 생산자에게 이익이 제대로 돌아가 생산기반이 튼튼하게 유지되고 마을의 문화자원이 기록되고 가꾸어지는 것이 제주의 미래다. 이로써 제주섬에서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