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부는 바람 01
자신이 좋아하는 제주의 모습을 생각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제주’를 담는 디자인 작업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또한, 제주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려 깊은 디자인이기도 하다. 바로 ‘Thoughtful Design'인 것이다. 과거에는 관광명소나 자연환경을 찍은 사진엽서, 돌하르방 미니어처 혹은 자석 등의 기념품들이 관광명소 기념품상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제주의 소재(자연, 문화)를 그대로 쓰는 차용에 가깝다. 반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생각 있는 디자인 상품들은 제주의 소재와 더불어 이야기를 담는다.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의 <재주도좋아>는 비치코밍(Beachcombing) 예술가들이다. ‘비치코밍’은 해변에 떠돌아다니는 유리조각, 플라스틱조각, 폐목재 등의 바다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들은 바다에 버려진 유리조각들을 모으고 이를 재활용해서 예술, 예술상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제주 바다가 좋아 제주에 살게 되었는데 그런 바다가 쓰레기로 오염되는 상황이 가슴 아파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노력, 즉 디자인을 시작했다.
제주시 중앙로의 <왓집>은 제주어, 먹거리 등의 다양한 제주 문화 컨텐츠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카페 겸 문화공간이다. 이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들은 뱃지, 열쇠고리, 카드, 수첩 등에 제주어를 지속해서 활용하며 재치 있는 이야기를 담는다. 제주어가 친근감 있게 다가온다. 또한, 동네의 이야기(역사, 마을풍습 등)를 담은 지도를 제작한다.
이전에 문화예술활동을 했던 문화이주민의 제주 입도와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문화기획자들이 제주를 떠나지 않으면서 제주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생각 있는 제주 디자인 상품들을 창조하고 있다.
이는 관광객, 도민, 디자이너에게도 좋은 소식이다. 제주에서 만든 추억들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품을 찾는 관광객들이나 지인에게 제주를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사고자 하는 도민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자신의 생각을 담은 디자인을 대중에게 표현하고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이 확대되면서 디자이너들도 행복하다. 채널의 확대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시장 진입장벽을 낮춰 디자인 작업을 활발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섬 곳곳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플리마켓(벼룩시장), 카페, 독립책방, 문화공간, 기념품상점 등에서 디자인 상품들이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제주를 생각하는 디자인은 제주의 과거와 현재의 경관과 문화를 기록하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닐 것이고, 제주의 매력을 외부에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홍보수단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디자인은 제주가 정작 추구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발과 부동산 폭등이 주요 이슈가 되어버린 현재, 제주어를 활용한 디자인은 제주의 문화유산인 제주어에 다가갈 수 있게 한다. 마을 지도 디자인은 느린 여행, 마을 이야기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작업이 된다. 바다쓰레기를 활용한 디자인 작업은 제주를 위협하고 있는 바다오염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게끔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제주의 생각 있는 디자인 생태계가 지속되고 나아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생각 있는 디자인을 찾는다면, 이러한 디자인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디자이너들은 더욱 활발히 작업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창조 작업에 뛰어들게 될 것이다. 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제주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섬 안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그 소식을 듣고, 그동안 눈길 주지 않았던 가치에 눈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