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명의 여행자, 한 지역의 방문객으로서 엄청난 발자국들(footprints)을 남기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지구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는 화두이자 담론이 되었다. 너도나도 모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말하고 있다. 솔직히 나 또한 관심사를 설명할 때 이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 말은 곧잘 하면서도 그를 실천하고 있는가?
9월 열흘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아시아 유럽재단이 주관한 ‘ASEFSU22’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45개 국 청년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관광(Sustainable Tourism)'에 대해 교실 안과 밖에서 배우며 서로 열띤 논의를 벌였다. 여러 곳을 방문하고 여러 강의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이 내게 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바로 나 자신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과 실천이었다.
‘여행자’의 관점이 아닌 ‘여행지’의 마음으로 여행 자체를 되돌아본다. ASEFSU22는 깨달음과 더불어 깨달은 바를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1. 여행지를 가는 과정에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편리한 비행기, 택시 등은 더욱 그렇다.)
- 따라서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대중교통과 도보 이용을 최대한 택했다. 도시, 국가 간 이동할 때도 버스 또는 기차를 이용했다.
2. 여행은 고단하기도 하다. 우리는 집을 떠나 호텔을 예약해 편안한 휴가를 보내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따라서 저녁 여행지의 방에서 따뜻한 목욕을 즐기고 싶고 청결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다. 그러나 삼십 분의 목욕물, 매일 바꾸는 침대 시트와 수건 등은 전기, 물 자원을 소모시키고 있다.
- 참가자들은 5-7명이 한 방을 쓰는 호스텔을 이용했다. 나도 여행할 때 피로를 풀고자 장시간 샤워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10분 이내로 샤워 시간을 줄였다. 샴푸 칠을 할 때도 수도꼭지를 잠그고 했다. 원래 매일 새 시트와 수건을 주문하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3. 플라스틱 사용이 크다.
- 원래는 여행할 때 짐을 줄이고자 텀블러를 일부러 넣지 않았다. 주로 여행지에서 페트병에 담긴 물을 사서 마시고는 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나에게 개인 물병을 가져올 것을 주문했다. 나는 행사 첫날 물병을 깜박하고 또 버릇처럼 자판기에서 페트병 물을 구입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항상 물병을 들고 다니며 수돗물을 물병에 받아 마셨다. 어떤 대학에서는 페트병 물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수돗물을 이용했다.
또한, 카페에서 플라스틱 잔을 종종 이용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기간 동안에는 가게의 머그잔을 이용했다. 심지어 강의실로 갈 때도 가게에 양해를 구해 머그잔을 들고 갔다 다시 반납했다.
4. 우리는 여행지에서도 체인점에 간다.
- 45명의 참가자와 기획자, 관련 기관 종사자들이 속한 큰 모임이었지만, 우리는 지역 식당, 상점 이용을 추구했다. 원래 지역민들이 찾는 지역 식당, 지역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는 나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개인 시간에도 지역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상업적인 공간이 아닌 지역 식당을 갔다. 덕분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따끈따끈한 스튜를 맛볼 수 있었다.
5. 내가 존재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이 죽는다. 또한 많은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한다.
-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채식을 장려했다. 인간의 먹는 즐거움을 위해 동물들이 비자연적인 방법으로 농장에서 사육되고 육류 제품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다. 이 사실이 종종 마음에 걸렸지만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 또한 채식을 하기로 다짐했다. 호기심이 하루는 내 굳은 의지를 방해했다. 슬로베니아 지역 음식은 육류를 이용한 게 대부분이다. 슬로베니아 농가를 방문한 날 나는 지역특산물에 대한 호기심에 육식을 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을 제외하고 채식을 실천했다.
여행을 사랑하는 나로서 여행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방해한다는 깨달음은 나를 상심에 빠지게 했다. 지속 가능한 관광, 과연 관광이 지속 가능한가? 지속 가능한 개발, 과연 개발이 지속 가능할까? 우리는 모순 덩어리들 속에 덮여 있다. 우리 존재 자체가 모순덩어리이다. 그러나 허무주의, 비관론에 빠지지 않겠다. 완벽한, 완전한 지속가능성,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란 없다.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고, 지역이 관광객에게 문을 열고, 개발을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우리가 깨달은 바를 마음에 두고 행동하는 과정에 의미를 둔다. 나는 한 명의 여행자, 한 지역의 방문객으로서 엄청난 발자국들(footprints)을 남기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를 깨달았기에 이전과 다른 내가 된다. 자, 이제부터 여행자, 내 존재의 발자국들을 줄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