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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에몽 Aug 16. 2021

[49] 1. 슬픔의 차례

남매였다 혼자가 되어 버린 낯설고 흔한 일

엄마, 요즘은 병원 가면 무조건 살아.


심드렁하게 전화를 끊었다. 맨날 아들 걱정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에 대한 부아가 치밀었다. 

제 발로 걸어갔다는데, 병원 한 번 간 적 없던 건강한 사람인데, 그저 간단한 시술이라고 말하면서, 도대체 뭐가 그리 유난인지. 짜증이 걱정을 한참 앞섰다. 연락을 다시 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금방 미운 마음이 삐죽 튀어나왔다. 


유난이야 유난. 

그것이 내가 나의 형제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더는 눈을 뜨지 못했고, 중환자실에서 그저 심장이 온전히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1일. 슬픔의 차례


나는 있을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키고 서 있었다.

이틀을 병원에서 밤을 새웠다. 밤이 무서웠다.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으면 어느샌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의 심장이 완전히 멈출 때를 기억한다. 산 위에 있던 그 병원은 휴게실에 난 창문으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해가 뜨는 시간, 온 하늘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꼭 노을 같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안심을 했던 건지, 잠깐 잠이 들었나. 그때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그의 심장이 멈췄다는 간호사의 전화였다. 심장이 멈춘 그에게 달려가며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꼈다. 드라마에서 보면 잘도 뛰쳐 들어가던데. 그 와중에도 중환자실 출입 규칙을 지키는 내가 지겹고 버거웠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 아빠가 오고 있어.

달려가 부여잡고 계속 그를 불렀다.  사실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도 나는 계속 그를 불렀다. 이미 심장은 멈췄고 한참이 지났는데, 사망선고를 내리지 못하게 의사를 막아섰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부모님이 오시면 그때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그곳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의 눈빛을 기억한다. 이미 죽었는데 도대체 왜 이 난리람. 더이상 다가오지 않고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가 막 떠오르던 시간이었다. 피곤했을 테고, 그들은 중환자실에서 올라왔을 때부터 심장이 멈추는 것만 기다렸을 테니 이해한다. 귀찮고 시끄럽고 어리석어 보였을 테지.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것밖에 없었다. 어차피 죽은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지켜야 했다. 정말로 가버린 나의 형제를 대신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결정되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옷을 갈아입고, 씻고, 휴가를 내고, 집을 정리하러. 그리고 나는 아무도 없는, 심지어 나의 형제조차도 없는 그곳에 홀로 남았다. 아침이었고 다른 장례식은 없었다. 그 커다란 건물에 나는 혼자 앉아, 세상이 끝난 듯 울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당분간 울 수 없으리라는 것, 아직 내 슬픔의 차례가 아니라는 것을. 그 차례는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영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내가 싫었고, 지겨웠고, 몹시도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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