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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 essay Oct 14. 2022

입사 첫날, 첫주 그리고.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쉽지 않은 취업활동과 수십 번의 좌절은 여러 가지 도움과 타이밍으로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Battersea 지역의 대형 설계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였다.


회사 정문을 통해 들어오면 처음 마주하는 계단

학생 시절 저녁 이후 아내와 산책하던 강변가의 사무실, 친한 형이 가끔 이야기하던 업무 및 동료들의 이야기가 단지 흩어지는 기억이었다. 다만 그 기억이 출근하는 날 아침 정장과 넥타이를 매면서 문뜩 떠오르는 건 몇 년이 지난 오늘도 생각난다.


10여 미터의 높은 층고를 가진 시큐리티에서 아무런 이야기 없이 하얀 벽에 붙어 찍은 사진은 현재 나의 사원증, 회사 이메일, 프로필 사진이 되었다. (코비드 이후, 최근 새롭게 칼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기존 사원들도 교체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오래된 동료들끼리 농담으로 오랫동안 여기서 버틴 훈장이며, 여전히 단 10분간의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다는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뮤지엄 입구를 오르듯 넓고 긴 계단은 신입들에겐 감탄과 움츠려듬을 같이 느끼게 하였다.(하늘에서 떨어지는 빛 그리고 수직적 구상은 나에게 신전을 올라가듯한 아우라가 아주 조금 드러난다. 방문객들의 경험을 강제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계단의 목적지는 Reception 데스크에 앉아있는 Anna 아주머니였다. (그때도 지금도 항상 한 명 한 명 이름을 기억해주는, 가장 회사서 오래된 Receptist이자, 회사 Partner로서, 신입사원들의 긴장된 마음을 살짝은 안정된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시면서 나의 이름을 묻곤, 곧 담당자가 올 거라며 옆에서 대기하라고 Bar에서 같은 날 입사한 동기들을 알려주었다.


Main Studio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1:1 스케일의 외장 마감 디테일 모형


좁은 Bar형태의 대기장소에는 나처럼 두리번거리며 옷매무세를 가다듬는 친구들과 어찌 아침 일찍부터 커피와 빵을 사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선배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 현재 나를 보면, 매주 신입사원들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립고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그 친구들은 알까 모르겠다)


이후 HR에서 나온 직원의 도움으로 Mezonnie East로 이동하였다. (이 장소로 말할 것 같으면 클라이언트나 Board Review 등 중요한 장소로 사용된다. 10명 중 10명은 이 장소에 와서 감탄을 하는 것 같다. 템즈강을 바라보며 넓은 오픈형 사무공간은 수십 마디의 말보다 클라이언트들의 경험에 깊이 박히는 것 같다). 처음 마주하는 Studio 1의 대표 A는 친근한 인사와 이야기를 회사 소개,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지원을 하고 그중에 뽑힌 사람들이라며, 회사를 아름답게 포장해주었다. (생각해보면 같이 입사한 20여 명의 입사동기 중 7년 이 지난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동기는 두 명밖에 안 되는 건 당연한 것일까 이상한 것일까?)


짧은 회사 소개 후 HR 직원과 함께 짧은 회사 투어를 시작했다. 메인 스튜디오, SketchModelshop, Hub, 칸틴,  Postroom 등 London Campus의 메인 공간들을 돌아가며 처음 보는 대형 사무실의 웅장함(?)에 놀라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다. (아마 한국서 일하던 사무실이 아뜰리에 규모여서 더 극적인 효과를 가졌던 건 아닐까? 다만 당연히 필요한 공간이지만 현실적으로 이 정도 여건을 갖춘 사무실은 단 한 곳도 없다는 걸 알기에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할 것이다.)  이후 간단히 동기들과 칸틴에서 기억 속에 지워진 점심 후 4일간의 소프트웨어 교육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Revit, Adobe, Foster Standard layout 등 교육이 있지만 그 당시엔 익숙지 않는 Micorstation(CAD 종류 중 하나 / 대표 소프트웨어로는 AutoCAD 시리즈)가 메인 건축 설계 소프트웨어였다. 따라서 많은 동기들이 처음 사용해보는 상황이 대부분이라 긴 시간을 명령어부터 플롯 세팅, 모델링까지 배우는 시기였다. 


특이하게 MOVE, COPY, ROTATE, OFFSET 등의 명령어 혹은 단축어로 구현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3, 2,  4 등 숫자로 입력되는 방식, 다채롭지 않은 표현기법, 수많은 플러그인 등이 배우는 입장에서 한계가 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럼에도 익숙해지고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오직 몇몇 오래된 7-8년 이상된 프로젝트들만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상황에 이르러 나 또한 간편하고 가벼운 Microstation이 추억이 되곤 한다.


월요일 오후 5시 소프트웨어  Training이 끝나고 퇴근하라는 이야기는, 당사자에게는 생소하고 첫 주차에 교육만 받는 것이 당연할 수 있을 텐데 취업을 했나? 내가 일할 사무실은? 같이 일하게 될 동료들은 누굴까?라는 궁금중에 대한 대답을 왜 그렇게 일찍 듣고 싶어 했을까 싶다. 어정쩡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시간 6시 아내는 회사가 사람들이 어땠냐는 질문에 두리뭉실 답변할 수밖에 없었고(당연히 나도 몰랐으니...)  다음날인 화, 수, 목 금요일을 그렇게 교육만 받고 5시만 되면 동기 몇 명과 맥주 한잔 할 법한데도 다들 어색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이후 새로 입사한 친구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첫 주차와 같은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냥 회사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게 될 건지 궁금해하지 말고 기분 좋게 동기들과 떠들고 놀고 즐겨야 한다.)


금요일 오후 대략적인 소프트웨어 교육을 마친 후 다시 첫날 만났던 메인 스튜디오 Bar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군 복무 시절 자대 배치 때처럼 각 그룹 혹은 담당 Partner의 비서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동기들을 대리고 돌아간다. 나의 차례가 되었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비서를 따라 내가 참여할 프로젝트, 자리를 소개받았다. (사실 그 이후 만나 인사만 하던 동기들은 점자 잊히고 가끔 식사 때 눈인사만 하다 어느새 퇴사한다는 간단한 메일을 받기 일수였던 것 같다)


내가 속한 건축 그룹은 Studio 5로 80여 명 정도의 인원으로 일반적인 런던의 Medium Practice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첫 프로젝트는 JV(Joint Venture) (한국에서는 합사라고 했던 것 같다) 프로젝트로 Studi 3와 함께 사우디에 있는 Infrastructure 프로젝트였다. 총규모는 100여 명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로 우리 스튜디오는 백여 개의 기차역 중 5개의 Special Stations를 계획하였다. 


같이 일하게 될 팀원들과 인사 및 프로젝트 Brief를 듣고 어쩌면 처음 회사에 입사했다는 기분을 느끼던 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깔끔하게 세팅된 컴퓨터와 Welcome Package는 나의 자리임을 짐작하게 하였고  옆자리에 출장 중인 Associate 직급의 한국분이 있다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그분도 한국인과 처음으로 같은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외국 사무실 첫 사수가 한국인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입사 첫 주는 교육과 긴장으로 지나가고 어떻게 주말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회사 영어 100 문장', 비즈니스 영어 책을 읽으며 이메일 어떻게 쓸까? 전화는 어떻게 받아야 하지라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며 옆에 있던 아내를 괴롭혔던 기억이 있다.

(회사마다 각자 일하는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회사는 외국인들에게 아주 높은 허들을 주어 웬만하면 영어에 많이 신경 쓰지 않고 몇 년을 다녔다. 못하면 못하는 데로, 예의 차리는 비즈니스 문장이 아니어도 의미만 통하고 하고자 하는 방향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회사 내에서 필요한 인원으로서 자리하는데 정말 100% 문제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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