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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17. 2022

아이 수능보내고 느끼는 엄마의 소회

작은 애가 무사히 수능을 보고 왔다. 사실 아이는 수능을 안 보고 싶어 했다. 수능 최저 없는 학종 전형으로 수시 6곳을 다 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생활기록부를 위해 그 애가 고등학교 3년 내내 얼마나 치열하게 숨 쉴 틈 없이 살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애 담임 선생님의 적극 권유로 수능 최저를 맞추는 곳을 한 곳 넣었고 결국 수능을 보게 되었다.


수시 6곳을 상향, 안정권, 하향으로 나누어 골고루 지원했고, 맞춰야 하는 수능 최저 기준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마음 편히 보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일찍 일어나 작은 애가 원하는 계란말이와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보온 도시락을 챙겨줬다. 시험날인데 미역국 징크스는 괜찮은지 연거푸 물었지만, 좋아하니 상관없단다. 어떨 땐 한없이 여린데, 가끔씩 뜬금없는 일에 배짱이 두둑할 때가 있다. 물론 나는 그런 딸을 사랑한다.


작은 애는 평상시처럼 식사를 하고 어슴프레 아침을 뚫고 집을 나섰다. 담담히 나서는 아이를 보며 마음 한 편이 찌릿했다. 불안하거나 긴장되서라기 보담 '이렇게 아이의 인생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구나!'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한 시절을 마감하는 의미로 작은 애가 살아온 흔적들을 잠시 회고해 보고 싶다.


작은 애는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동네에서 원 없이 놀았고(본인 의견), 공부는 오르락내리락 이었으나 캠핑, 요리, 과학, 노래, 독서대회 등 매사 의욕적이었다. 중학교 때는 팀 프로젝트와 각종 예체능 수행평가에 강했고, 여전히 성적은 들쑥날쑥이지만 수업태도는 썩 좋았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주최한 진로설명회를 듣더니 진로를 일찍 정해야겠다며 미디어 분야를 택했다.


그리고 고단한 고등학교 생활 3년이 시작되었다. 학종 전형을 염두에 두고 수행평가와 내신은 물론 신문 동아리와 학생회 활동에 매진했다. 지난 3년 간 아이의 심리적, 신체적 고단함이 말도 못 했다. 자기 역량보다 더 해내느라 늘 기진맥진이었고 없던 아토피 증상이 올라와 시달렸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극심한 경쟁 속에서 마음 맞는 친구 한 명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3학년 때 다행스럽게도 친구들을 만나서 다행이었지만.


그렇게 울며불며 힘겹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이제  끝이  앞이니 엄마로서도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가 없나 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주어 고맙고, 불합리함에 불평하고 비판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음에 감사한다.  나은 교육체제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 또한 가득하기도 하다.


평상시에 보던 모의고사처럼 잘 보고 오겠지 믿으며 마음을 잠잠하게 가다듬었다. 얼마 안 있어 지난밤 새벽에 귀가한 큰 애가 부스스 일어나 아침을 먹으려 부엌을 어슬렁 거린다. 어젯밤 나도 모임을 하고 11시쯤 귀가했더니 큰 애가 아직 귀가 전이었다. 12시가 다되어도 연락이 없길래 카톡을 했더니 큰 애는 그마저 보지 않았다. 슬슬 불안해지길래 전화를 했다. 큰 애는 취한 것도 아닌데 한껏 목소리를 깔고 금방 가겠다는 말만 했다.


얼마 전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여자 친구랑 함께 있는 것 같아 더 캐묻지도 못하고 "그래, 빨리 오너라." 하고 끊었는데 평상시 목소리톤이 아닌 게 영 걸렸다. '결혼은 안 하겠다, 혼자도 좋은데 피곤하게 연애를 뭐하러 하느냐'라고 노상 말하던 녀석이 드디어 누군가를 만나 내심 반가웠는데 말이다. 아침상에 마주 앉아 아들의 기색을 살피며 지난밤의 사정을 슬며시 물어보지만, 역시나 노 코멘트.


둘 사이에 필요한 'deep talk'였을 뿐이라는 말만 한다. 궁금하지만 성인인 아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기 위해 더 묻지는 않았다. 전혀 다른 타인 둘이 만났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자신이 살아온 세상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이, 상대방의 세상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공감하고 받으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 밤으로 끝날 일이겠는가. 나의 20대를 돌아보며 아들의 현재를 헤아려 본다.


큰 애는 이제 살면서 가장 충만하면서도 아픈 만큼 배울 수 있는 사랑의 페이지를 막 넘기기 시작한 것 같다. 녀석이 대학 간다고 긴장해서 실기전형 보러 다닌 게 엊그제인데, 벌써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모두 같은 시간 속에 살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각자의 시간 속에 살고 있구나 싶다. 작은 애는 학창 시절을 막 끝내는 지점에 서 있고, 큰 애는 사랑의 시간을 막 시작했다. 한 가지에서 두 가지로 분화해 가는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나는 곧 50의 시간을 맞는다는 사실에 문득 뭉클해진다. 멈추지 않는, 멈출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에 숙연해진다.


나무가 한 해 한 해 살아온 시간을 나이테로 더해가며 넓혀가듯, 나도 뭔가 의미 있는 삶의 흔적을 남겨가야 할 텐데... 아이들의 변화가 기쁘면서도 나의 삶이 또 무겁게 다가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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