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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l 27. 2019

다소 불편해도 용기있는  목소리가 절실한 때

  살면서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다. 어려서 아버지가 매를 드셨을 때 잘못해서 맞으면서도 "아버지가 지금 나를 사랑해서 훈육으로 때리시는 거냐 아니면 그저 아버지 화를 삭이지 못해 때리시는 거냐?" 당돌하게 따지고 들었다. 아버지의 분노에 주눅 들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 솔직해서 그랬는지, 눈치가 없어서 그랬는지 그 뒤로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일어나면 입 안에 가두기가 어려웠다. 

  

  대학 때에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좀 더 의식하며 주저하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뱉었다. 학과에서 마련한 외부인사 초청 학부생 대상 강연이 있었는데, 스크린에 투영되던 PPT자료에 갑자기 여자 나체사진들이 한 번씩 섞여 나왔다. 나른해져 가던 중 그 사진을 본 순간부터 갑자기 바늘방석이 되었다. 난 공대생이었기 때문에 참여 학생의 3/4이 남학생이었고 몇몇은 키득댔다. 연단에 앉아있던 교수님들은 헛기침을 하고, 놀란 듯이 입을 벌리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했지만 제지시켜주진 않았다. 난 얼굴에 열기가 올라옴을 느끼며 침묵하고 조용히 혼자 나가버릴까 잠시 갈등했다. 그러기엔 비겁하다고 느껴졌고 어떻게 하면 그 강사의 형편없는 성의식을 지적하고 무례함으로 상처 받은 내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집중했다. 강연이 끝나고 마침내 질문시간이 되었을 때 심호흡을 두어 번 한 다음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손을 들었다. "강연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맥락 없이 갑자기 나왔던 몇 장의 나체사진들을 넣으신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강사는 분명 순간 흔들린 것 같았지만 내심 태연하게 강연 중에 조는 학생들을 깨우기 위한 나름의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는 학생들은 여전히 있었던 것 같다고, 그 방법은 통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매우 불편했으니 다음부턴 그런 사진은 빼 주셨으면 좋겠다고 최대한 차분하게 요청했다. 그 뒤로 그 강사가 나체사진을 또 사용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는 없다. 


  교양 역사 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교수님이 나이가 60대쯤 되신 분이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일제 식민시대를 미화하는 친일 발언을 주저 없이 하고 계셨다. 나는 바로 손을 번쩍 들고 항의했다. 역사 교수님이 이러시면 되냐고, 지금 일제 식민사관을 가르치는 거냐고. 멋쩍어하시며 자기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변명을 오래오래 하셨던 것 같다. 그런 일들의 여파로 나는 교수님들에게 눈에 뜨이게 되어 자주 호명을 당하였고 과 선후배들은 나를 좀 부담스러워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런 부담이 나의 행동거지를 제약하진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동아리에 같은 생각,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기대며 살 수 있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과의 사람들도 다시 편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행동으로서 야기된 변화는 분명 감지되었다. 과 복학생 선배들의 여학생들에 대한 말이나 태도가 좀 조심스럽다고 느껴졌다고나 할까. 평상시에 마구잡이로 하던 음담패설을 조금 피해서 한다던지 그런 것, 또 역사 교수님도 친일 발언을 자제하시고 가끔 강연 중에 학생들 눈치도 보셨던 것 같다. 나름 주목당하느라 피곤했지만 옳다고 생각되는 변화에 기여한 듯하여 가슴 당당히 펴고 살았다.


  부당한 상황에 처한 약자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이후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용기야 어떻게 내보겠는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문제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때문에 사는 게 한동안은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당신이 뭐야? 당신이 뭔데 그런 소릴 하느냐?"며 대번 삿대질을 하고 드잡이 태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독선적이고 오만한 사람일수록 합리적인 지적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체면이 큰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는 약자가 존재함을 당당히 알릴 수 있고, 가끔 그 불편한 갈등 끝에 진심 어린 화해를 이루고 나면 서로에게 새로운 걸 배우며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를 가지려면 열린 자세가 필수적이다. 잠시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의견이 어느 부분이 다른지, 왜 그런 견해를 가지는지 이해해 보려고 진심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개는 따뜻한 의견 봉합이 일어나기도 하고, 상호 간에 견해와 인식의 확장을 경험하며 창조적 관계로 나아갈 발판이 마련된다. 갈등이 상호 성장의 경험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가족들이 2007년부터 3년여간 캘리포니아 주에서 거주하던 때이다. 영어나 좀 해볼까 하는 맘으로 어덜트 스쿨을 다녔다. 어덜트 스쿨은 미국 내 신규 이민자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무료로 영어 강습과 각종 생활기술 등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어느 날 영어수업의 주제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태평양전쟁이었다. 일본계 미국인이었던 선생은 진주만 공습을 기점으로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관계없이 미국 내 일본계 조상을 둔 12만 명의 사람들이 사막이나 산악지대에 위치한 강제수용소로 이동해야만 했는데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그건 분명히 인종 차별이었다고 했다. 있을지도 모를 일본 본국과의 스파이 역할을 차단하고 미국 내 안티 일본인들로부터의 보호를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중 미국 내 일본인 강제수용소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어서 좀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면 당연히 침략자인데 왜 피해자인 척 어필하느냐고 난 또 따졌다. 공교롭게도 나의 발언이 끝난 후 필리핀인과 중국인 몇몇 도 나와 비슷한 의견을 표했다. 선생은 이미 붉어진 얼굴에 끊임없는 손부채질을 하며 해명하고자 애를 썼다. 이후 이삼일 간 그 선생은 수업에 오지 않았고 그의 지인인 대체 선생님을 통해 그분이 좀 충격을 받았노라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해 들었다. 내가 좀 과했나 싶으며 슬슬 미안해졌다. 선생이 다시 나왔을 때, 피해를 입은 한국인과 동아시아인들의 오랜 분노를 자기가 너무 가볍게 보았던 것 같다고, 앞으론 좀 더 자기 위주의 견해를 주장하기에 앞서 듣는 이의 입장도 세심히 살피겠다고 했다. 진심 어린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나도 나의 관점이 섬세하지 못했다고, 일본 본토의 전쟁을 일으킨 자들과 미국 내 희생양이 된 일본 이민자들의 다른 입장을 달리 보지 못했다고 마음을 담아 사과했다. 우리는 촉촉해진 마음으로 포옹하며 서로의 등을 다독였고 마음속의 찝찝함은 그대로 휘발되었다. 전적으로 그분의 열린 마음 덕분이었다. 공격받았지만 체면에 급급하지 않고 본질을 살피고 성찰하는 자세가 내 미숙한 공격을 미안하게 했고 진심으로 역지사지하도록 만들었다. 가슴에 담고, 배우고 싶은 태도였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관계가 다시 급속도로 경색되고 있고, 그 규제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자발적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한마음 한뜻으로 강도 높게 확산되고 있다. 비단 일본 규제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진 일본 정부에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결연하게 높이고 있는 것이다. 독도도 그렇고 강제징용 피해자들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일각에선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한일 동맹이 위협받고 있다고, 당장 일본에 특사를 보내거나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고, 양국의 사이의 불편함만을 크게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불편함에만 급급하지 말고 이 불편함이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를 그려보면 어떨까. 옳다고 생각하는 변화는 저절로 손에 쥐어지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진정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더불어 미래에 번영하기를 염원한다면 열린 자세로 양국 사이의 뿌리 깊은 사안들을 성의 있게 다루길 바란다. 그게 진정으로 성숙한 국가의 모습이자 우리나라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의미 깊은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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