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힘, 열정과 끈기. 정말?

엔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을 읽고

by 지수

빈둥대는 아이들을 곱게 보기 어렵게 만드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책, 그릿(GRIT)을 만났다. 이 책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보다 열정과 집념이 있는 끈기의 힘 즉, '그릿'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자식들 삶은 자식들 몫이라고 매번 되뇌며 기대를 내려놓기 위해 나름 애쓰는데, 노력을 강조하고 자녀의 그릿을 길러주는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접하니 또 약하디 약한 평정심이 흔들린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로서 열정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점은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예나 지금이나 늘 들어오던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그 '노력 성공신화'에 더해 뭔가 새로운 게 더 있는 건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았다.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 엔젤라 더크워스는 교직생활을 하며 인생의 성공에는 재능이나 성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그릿'이 있음을 알아챘다. '그릿'의 핵심인 열정은 대개 중학생 무렵 흥미를 가지게 되는 분야가 나타나며 시작되는데, 사람마다 달라 어떤 이는 나이 40세에 발견한다고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흥미라는 게 성찰을 통해 발견되는 게 아니라 외부와의 상호작용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머리로, 의식적으로 '난 이거 좋아해'라고 정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에서 '어, 이거 뭐지?' 같은 새로운 느낌이 그 초기 흥미라는 것이다. 이 흥미 발견의 초기에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한데, 대개 그 느낌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아이가 그 일을 즐겁고 보람되게 계속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율성을 허용하여 격려해주고 지지해줘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만일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분야가 부모가 환영하는 분야가 아닐 때 부모로서 취해야 할 마음가짐이나 자세는 어때야 할까. 이런 사례들이 사실 주변에 더 흔한 것 같은데 말이다. 부모의 기대와는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아이에게 자율성을 허용하고 변함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 주어야 할 근거들과 그 실질적 방법들이 현실적으로 더 궁금하다.


여하튼 일단 발견된 흥미는 이후 흥미 심화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시기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의식적 연습을 통해 성장을 이루어내는 과정이다. 실수나 실패로부터 자신이 뭔가 계속 배우며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성장형 사고방식이 이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한다. 저자의 언급대로 아이들의 경우 예체능 등의 활동을 통해 도전과 실패와 성취를 반복하며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추고 그릿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그릿을 길러주는 다른 방법으로는, 부모가 먼저 그릿의 모범을 보여주면 좋고, 동조 욕구를 통해 동기부여가 강해지는 훌륭한 팀과 문화를 가진 집단에 들어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동조 욕구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훌륭한 팀과 문화를 가진 집단에 들어가면 스스로의 성장에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으면서도, 뛰어난 타인들과의 지속적인 비교 평가로 인해 자칫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분야에서 이루고 싶은 바를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아이는 물론 경이롭게 아름답다. 더불어 그 길을 가는 아이의 현재 행복도 순위에서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어른의 경우 흥미 심화의 과정에서 그릿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저자는 그릿이 한 번 정해지면 변화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행히 노력을 하는 한 나이 들면서도 지속해서 늘어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관심사를 분명하게 가지고, 그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 질적으로 다른 연습을 하며, 높은 목적의식으로 역경이 왔을 때에도 낙관적 자기 대화를 통해 끈기 있게 행동하기를 권한다. 흠, 그런데 나를 삼켜버릴 만한 역경에 산산이 부서져도 끈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 후일을 기약하며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 아닐까? 성공을 향한 열정을 막을 능력 밖의 역경은 세상에 없다고 단정하기는 무리이니 말이다. 고로, 내가 버틸만 한 역경을 만나느냐, 대처불가 초강극의 역경을 만나느냐는 결국 우연 또는 운명의 영역이 아닐까?


저자도 언급했듯이 아이가 흥미를 가지게 되는 초기 과정도 혼란과 우연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공감이 된다. 관심분야를 발견하고 안 하고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자기 성찰도 아니고, 혼란과 우연 속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다. 성공의 길 면면에 열정과 끈기도 필요하지만 우연, 운명의 영향도 무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인 거다. 물론 흥미를 발견한 이후 심화 과정에서 노력이 전혀 없다면 성공할 가능성 0%, 노력을 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의지와 노력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법은 없다. 성공의 결정은 내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사에 불굴의 노력을 허무하게 만드는 실패는 언제든 있고, 미비한 노력에 이해되지 않는 대성공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실패의 원인을 노력 부족이라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도대체 다시 행복해지기가 너무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릿을 기르는 것에 대해 충분히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살아갈수록 내 마음은, 세속적 성공이 좋긴 하지만 행복과 상충되지는 않는지 이런 걸 따져 보는 데에 더 머무르니 말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자녀의 성공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야 외면하기 어렵다. 게다가 육아에 관한 한 아이에게 최상의 롤모델은 결국 부모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는 게 아니라 부모를 보고 배우며 자란다는 그 뼈 아픈 말... 어찌 살아야 할지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항상 아이들의 눈초리를 의식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책에서는 '그릿의 롤모델이 꼭 부모가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부모만큼 아이들의 삶에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결정적인 존재가 또 있겠는가. 결국 아이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떠밀려서라도 성공을 위해 열정과 끈기를 불태워야 한다는 건지 앞이 막막하다. 사실 오늘날의 내 모습도 아이들 좀 잘 키워보겠다고 읽어 댄 육아책들을 나름 소화해 낸 결과인 것도 일견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노화를 핑계 대고 하고싶은 것 하며 그저 유유자적 살려했더니만 또 만났다, 세상의 오지랖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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