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설명회에 다녀와서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by 지수

작은 아이 중3 때 학교에서 진행된 진학설명회에 다녀왔다. 고입을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강연은 주로 고등학교 진학 후 생활기록부 관리와 자기소개서 쓰는 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강사님은 고등학교 교사로서 그리고 장학관으로서 오랜 시간 교육과 입시를 경험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챙겨야 할 학종의 핵심사항들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서울권 주요 대학에서 뽑고자 하는 미래 인재상에 대해 듣다 보니, 슬슬 겁이 났다. 배려와 협력이 장착된 리더십에, 진로분야에 대한 상당히 깊은 지식의 축적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며, 진로 연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달은 자신의 생각도 말과 글로 유기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단다. 사례로 ㄱ대학의 학생부 교과전형 면접을 들었는데, 면접 질의 내용이 놀라웠다. 수준 높은 질의에 대한 합리적인 응답은 물론 옆자리 수험생의 답을 잘 듣고 비판적인 질문을 제시해야 하며, 그에 따른 자신의 의견변화까지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하고 설명해 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능력은 거의 논리성과 지적능력, 순발력 그리고 언변까지 제대로 갖춘 법정에 선 변호사의 변론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과연 이런 능력을 우리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 기르고 성장시킬 수 있단 말인지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아득해지는 마음으로 귀가했던 기억이다.


당시 내 아이는 물론 주변에 또래 아이들 대부분의 일과를 보면 당연한 걱정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등 때부터 학교가 파하자마자 자의 반 타의 반 학원이란 곳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게 아이들의 일상이다. 귀가 후 짧은 자유시간엔 각종 영상과 게임, 얄팍한 온라인 소통으로 그나마 위안을 찾는다. 놀이와 자유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결국 잠자는 시간을 늦추기 급급하고 대부분 만성적으로 잠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런 일상은 악순환이 된다. 피곤하니 학교생활에 의욕을 내기가 벅차고, 학업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결국 주눅 들고 무기력해져 또 학원을 찾게 되니 말이다. 초등과 중등 과정 동안 내내 이런 패턴으로 타율과 피곤에 찌든 아이들이다. 자유시간이 없어 무엇인가를 스스로 탐구하고 즐겁게 빠져 본 적이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진학 후 갑작스레 위와 같은 성인도 갖추기 어려운 능력들을 기대하고 평가한다니! 현실과 참 괴리가 있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이것, 저것 신경 쓰기 벅찬 또는 학종 준비시기를 이미 놓쳤다고 판단하는 많은 학부모와 고등학생들이 나머지 방법인 수능을 통한 정시 입시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것도 당연히 만만치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다고 예전의 문제풀이식 수능 입시로 100% 회귀하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본래 학종을 위주로 하는 수시의 도입은 붕괴된 고등학교 수업을 살려보려는 취지였다. 토론과 팀작업, 프로젝트 활동 등을 통해 아는 지식을 기반으로 무엇을 창출해 낼 수 있는가가 관건인 교육방식으로 말이다. 분야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세분화되어 복잡해진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숙달된 문제풀이 능력만 갖춘 획일적 산업시대형 인재상으로는 대응할 수가 없다. 물론 시대에 발맞춘 교육이 아직까지도 고등학교 교실에서 요원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내 아이들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중학과정에서는 어느정도 새로운 수업 방식이 엿보였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역사 속의 특정 주제를 팀 율동으로 표현하기' 같은 수행평가나 자신의 관심사를 마음껏 탐구해 볼 수 있는 '나만의 책 만들기 프로젝트', 반 아이들 전원이 참여하는 뮤지컬이나 영화제 같은 혁신적인 수업들에 고무된되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동시에 교과서만 외우면 고득점 할 수 있는 영어시험이 여전히 있었고, 교사의 일방적 강의로만 진행되는 사탐과 과탐 수업들이 있다. 가히 과거와 미래 지향적 수업방식이 혼재하는 과도기적 상태이다. 그러니 입시도 과거형과 미래형이 혼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점차로 미래형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교육시스템과 입시체제로 전환시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물론 입시의 공정성을 해치는 요인들을 정비해 나가는 것 또한 필수적인 사안일 것이다.


내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전해듣다 보면, 나 때보다 학교가 즐거워진 것은 분명하다. 예체능을 포함한 다양한 학업 연관 활동들에 그룹으로 참여하고, 갈등을 겪어보고, 지혜를 모아 기존의 의견에 새로운 시각이 보태며 비교, 비판하는 능력을 기를 기회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여전히 학교가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이유이다. 큰 아이 때와 작은 아이 때의 중학교 공개수업을 비교해보니 작은 아이의 교실 분위기가 훨씬 살아있다고 느꼈다. 초등 때부터 과정중심의 평가와 팀작업, 프로젝트 수업등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은 애가 다양한 진로활동 및 자율적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며, 학교생활을 즐겁게, 주도적으로 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아이들의 삶은 길 것이다. 살면서 좌절하고 실패해 힘들어도 가족 안에서 회복할 수 있다면 아이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아이들의 학업적 성과와는 별개로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기쁘고 뿌듯하고 고마운 일임을 늘 유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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