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는 엄마

울림과 위로가 되던 이야기들

by 지수

아이들 어린시절 동네 책 모임에서 처음으로 그림책을 접했다. 다 큰 어른들이 그림책이라니,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그림책의 단순 명료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읽는다더니 정말 그랬다. 작가는 한 이야기를 하지만 독자의 그릇대로, 경험대로 여러 갈래로 소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많은 그림책을 접했는데 그중 나의 경험과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주던 이야기와 위로가 되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첫 번째 책은 유타 바우어의 <고함쟁이 엄마>이다. 펭귄 엄마가 아이에게 고함을 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엄마의 고함에 화들짝 놀란 아기 펭귄은 온몸이 조각조각나고, 몸 조각들은 세상천지로 날아가버린다. 머리는 우주로, 몸통은 바다에, 두 날개는 밀림으로, 부리는 산 꼭대기에... 엄마가 하늘을 나는 큰 배를 타고 아기 펭귄의 몸조각 들을 찾아 정성껏 꿰매 다시 아기 펭귄을 만들고 "아가야, 미안해."하고 말한다.


읽었을 때 큰 아이 아기 때 내가 저지른 잘못이 불현듯 생각났다. 맘 속 깊숙히 꽁꽁 숨겨두었던 창피한 실수인데, 그림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떠올리게 된 것이다. 큰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날 무렵, 둘이 마주 앉아 있다가 아기가 뭔가 내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했던 것 같다. 무서운 표정과 단호한 태도로 수차례 제지하다가 어느 순간 충동적으로 손이 올라가며 아기의 뺨을 내리치고 말았다. 아기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자 그제서야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손이 아기 얼굴을 내려치는 순간 느껴진 폭력의 쾌감을! '아, 이 행동, 습관이 될 수 있겠구나!' 나도 모르게 또 그럴까 봐 마음을 단단히 단속하며 다시는 아이 몸에 손대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큰 애에게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혹시 기억하는지 물어보진 못했다. 너무 부끄러워서... 그 실수를 항상 되새기며 아이에게 더 따뜻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그때 아팠던 마음을 말끔히 치유하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사랑이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고함쟁이 엄마>는 그렇게 깊이 묻으려던 기억을 되살리며, 상처를 주는 것도 엄마지만 상처를 회복시켜줄 힘도 엄마에게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었고 나는 힘을 내어 사랑으로 키우려고 더욱 애썼다.


두 번째 그림책은 퀜틴 블레이크의 <내 이름은 자가주>이다. 부부의 일생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지만, 그림과 이야기가 아주 재치 있다. 일단 아이가 선물로 포장된 채 배달되어 온다. 아이의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똥을 싸도 이쁘고, 음식을 게워내도 이쁘기 때문에 부부는 행복하게 아이를 키운다. 그런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가 자라면서 모습이 계속 바뀐다. 꽥꽥 울음소리를 질러대는 독수리도 되었다가,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새끼 코끼리도 되었다가, 더럽게 아무 곳이나 뒹굴어 다니는 멧돼지도 되었다가, 아무 데나 불을 뿜는 못된 용도 되었다가, 심지어 커튼에 매달려 있는 박쥐도 되었다가. 유아 때의 행동 특징을 잡아 이런저런 동물들로 묘사한 점이 참 재미있다. 가장 재미있는 변신은 아이가 털북숭이가 되는 때이다. 털북숭이는 팔, 다리, 몸통이 있는 인간의 형체지만 아직 인간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런 괴물이 어느 날 말쑥한 청년이 된다. 마치 내 아들도 이렇게 반듯하게 성장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백배한다. 마지막 장면이 또 인상적이다. 주름으로 물결치는 탄력 없는 목과 마른 낙엽 같은 얼굴의 노인부부가 펠리컨이 된다. '아, 부모도 영원히 인간일 수는 없구나.' 아이는 부모의 지극한 사랑으로 성장하고, 아이가 전적으로 의지하던 부모도 긴 세월의 끝엔 우스꽝스러운 펠리컨이 된다는 귀여우면서도 긴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는 책이었다.


이 이야기를 읽던 때가 아마 아이들이 한참 손 많이 가던 때라 많이 힘들었나 보다. 삶의 어떤 여정에 있든 지나가기 마련이니 너무 현재의 어려움에 복닥거리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기억이 난다. 또 그렇게 키우다 보면 아이가 반듯하게 성장할 날이 올 것이고, 늙어 약해진 내가 아이에게 의지할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삶은 또 힘내서 살 만한다는 그런 위로로 받아들여졌다. 난 벌써 그 위로가 옳았음을 느낀다. 이미 아이들에게 의지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일상을 나누며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건 물론이고, 온갖 IT기기들의 기술적인 면에서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점점 의지하다간 내가 아이들을 평생 끼고 살고 싶을까 봐 은근히 걱정이다. 아이들만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게 아니라, 부모도 아이들로부터 자립해야 함을 나이 들며 더욱 실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에 의해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온전한 사랑을 하는 자립적 존재들이기를 바라기에.


이런 좋은 그림책을 만나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던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나에게 힘이 되었던 그림책들에게 보답하고자 나도 그림책을 좀 만들어볼까 하고 한동안 끄적거렸다. 그림책이니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데 나에겐 이야기를 이미지화시키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미흡함을 깨달았다. 아쉽지만 욕심을 깨끗이 접었다. 목소리나 잘 가다듬어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기나 꾸준히 할 일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더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울림과 위로를 퍼뜨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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