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가 며칠 전 중학교를 졸업했다. 학업적으로나, 친구관계나, 학교생활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성장을 한 중학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일반고 진학을 코앞에 두니 돌연 '이대로 괜찮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욕심을 더 내어 특목고를 미리 준비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가, 더 성취할 수 있는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마냥 하는 대로 둔 게 잘못이지 않을까 하는 자책감 비슷한 마음도 들었다. 자식에 대한 불안병이 또 도진 거다. 이 불안병은 참 완치가 어렵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강연을 듣는 치료를 해 잠시 평안한 마음을 가졌다가도 틈만 나면 증상이 재발한다. 불안병이 도지면 아무리 혼자 이겨내 보려고 노력을 해도 도리가 없다. 둘에 한 번은 어떤 형태로든 아이에게 불안이 표출되고야 만다. 대개는 화가 섞인 잔소리의 형태로 말이다. 엊그제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친구와 노는 약속을 연달아 잡고, 각종 영상을 보며 뒹굴거리는 딸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잔소리 폭격을 시작했다. 다른 때보다 화가 더 실린 목소리였다. 공부하기 싫으면 독서라도 하라고, 고등학교 가기 전 마지막 기회를 이렇게 빈둥대며 보낼 거냐고, 목표나 높게 잡지 말던가, 공부하기 싫으면 목표를 대폭 낮추라고, 너의 미래계획을 내가 도와줄 거라 기대하지 말라고, 노력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겠다고, 네 인생이라고, 난 모른다고... 하필 저녁식사 자리여서 아이는 눈물을 함께 삼키느라 밥도 잘 못 먹었다. 그대로 집 안을 꽉 채운 무거운 공기에 짓눌린 채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저녁, 잔소리 폭격을 목격한 큰 애가 조언을 한다. 자기 중 3 졸업 때도 그랬지만, 그렇게 화를 내서는 서로 감정만 상할 뿐 마음가짐의 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화를 빼고 애정 어린 걱정을 진심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그게 참 매번 격해지는 감정을 다스리는 게 아직도 미숙하다. 큰아이는 또, 작은 애가 심성이 여려 자기처럼 즉각적으로 반항도 못해 나의 분노를 받고만 있으니 너무 가엾다고도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나 남편이나 큰 애는 화가 나면 말로, 행동으로 상대방을 찔러 반격하곤 하는데 작은 애는 그런 적이 없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직접 물어보니 화를 내는 가족들이 무서워서 감히 반격은커녕 자신의 힘든 마음을 드러내어 표현할 수 조차 없다고 한다. 무섭다고??? 불편한 게 아니고? 딸 애가 공포심에 떨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내가 물건을 던진 것도 아니고, 소리를 바락 바락 지른 것도 아니고, 그저 화가 섞인 말일뿐인데. 엄마의 감정 섞인 잔소리가 그저 잠시 불편할 순 있겠으나 그게 어떻게 공포가 되는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큰 애랑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무리 말로 한다 해도 이미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나의 고압적인 자세와 위협의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폭력이지 않겠냐고 한다.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적 폭력이든 종류와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다치게 하는 폭력이라는 본질은 같다는 거다.
어렸을 적 공포에 떨던 때의 나를 잠시 떠올려 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려움 가득한 상황 속에서 대항할 수 없는 미약함, 무력감에 스스로 측은해했던 마음도 같이 떠올랐다. 에휴, 화나서 물건 안 던진다고, 분노에 사로잡혀 분별없는 말과 행동은 안 하는 엄마라고, 그래서 좋은 엄마라고 자식들한테 곧잘 생색내고 살았는데, 결국 나도 자식에게 공포심 유발하는 폭력 엄마였구나...
어렵다. 자식을 바르게 사랑하는 엄마 하기가 진실로 어렵다. 괜한 욕심에 불안병이 도져 작은 애를 잡다가 또 한심한 내 꼴만 보게 되었다. 좋은 엄마 되겠다고 또 다짐하기도 부끄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