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연가

by 지수

다음 포털에 다정한 남매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오빠가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여동생에게 벽에 붙은 한글과 그림을 가리키며 읽어주고 있는 영상이다. 바로 도경완님과 장윤정님 댁의 남매 연우와 하영이다. 볼살이 오동통한 하영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귀엽다. 동생의 표정과 짧은 옹알이만으로도 무슨 뜻인지 대번 알아듣고, 자기가 이해한 게 맞는지 물어봐주고, 다정하게 대꾸해주는 연우가 참 의젓하고 사랑스럽다. 보고 있자니 저절로 엄마 미소가 배시시 지어진다. 게다가 연우는 엄마 바라기이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엄마 주려고 도시락통이건 어디건 꼭 싸가고, 엄마가 외출할라치면 마음이 아파 엄마에게서 애틋한 눈길과 쓰다듬는 손길을 뗄 수가 없다. 연우의 엄마에 대한 순정 넘치는 사랑이 눈물겹다. '이런 상황, 우리 집에서도 흔하게 있던 일인데...'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은 게, 잊고 살던 아들과의 지난 기억들이 새록새록 소환된다.


미국 LA에 잠시 사는 동안 남편이랑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돈 씀씀이에 대한 것과 사소한 일처리를 서로 미루느라 자주 투닥거렸기 때문이다. 3살 난 아들이 늘 곁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 애썼으나, 어느 날은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인내심이 풀려 버렸다. 대낮부터 언쟁 끝에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고, 남겨진 나는 서러움에 꺼이꺼이 울음을 터트렸다. 연신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내는데, 그때까지 잠자코 블록 놀이하는 냥 거실 한쪽에 있던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온다. 가냘픈 작은 손을 흔들리는 내 어깨에 살포시 얹으며 "엄마, 울어요? 울지 마세요... 엄마, 괜찮아요?"하고 걱정스러운 듯 불안한 시선을 내게 던진다. 나는 울음을 억지로 꾸욱 삼키며 "어, 엄마 괜찮아. 아빠랑 싸워서 속상해서 그래. 좀 있으면 나아질 거야..." 설명해주고 미안하다고 다독인다. 품에 안긴 아들도 말없이 고사리 손으로 내 등을 토닥토닥해 준다. 작은 체구의 어린 아들에게서 받은 따뜻한 위로의 기억. 도대체 누가 누굴 돌보았던 건지 지금 다시 기억해도 부끄럽다.


작은 아이가 태어난 후엔 독차지하던 엄마 사랑을 동생과 나눠야 함에 동생이 미울 법도 한데, 별 시샘도 없이 동생을 예뻐하고 귀하게 여기며 친절하게 돌봐주곤 했다. 큰 애가 5살 무렵 2살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장난스럽게 읽어주던 장면은 내가 좋아하는 베스트 기억 중 하나이다. 반면 두고두고 마음 아팠던 기억도 있다. 녀석이 6살 때 쓰기 연습을 하는데 연필 잡는 손이 영 어색했다. 책에 나오는 사진처럼 그 손 모양이 딱 안 나오는 것이다. 새끼손가락으로 잘 받치지 못해 그런가 싶어 똑바로 손가락을 바닥에 대라고 아이를 다그쳤다. 닭똥 같은 눈물과 땀을 뚝뚝 흘리며 엄마 말대로 사진처럼 연필 잡는 손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는 안중에 없고 오직 못나 보이는 아이의 손만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애는 다소 손가락과 손바닥의 길이가 상하로 길어 절대로 사진처럼 그 손 모양은 나오지 않는 것을 어미가 둔해서 나중에야 깨닫고 애꿎게 순한 아이만 잡던 일... 요즘도 생각나면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사과하곤 한다.


아들과 나는 세상의 세파도 같이 넘었다. 7살에 영어를 거의 못하는데 미국 공립초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억울한 일이 꽤 많았다. 운동장에 줄 서서 반의 모든 아이들이 다 도착해야 교실로 들어가는데, 줄 서있는 동안 개구쟁이들이 장난을 치나 보다. 아들 뒤에 서 있던 녀석이 아들을 앞으로 밀치는 통에 아들도 앞에 서있던 녀석을 밀치게 되었는데, 앞 녀석이 뒤돌아보면 뒷 녀석은 자기는 모르는 일인 양 딴 청을 부리고 우리 아들이 그랬다며 혀를 내밀고 놀리더란다. 영어가 안되니 상황 파악이 다 되어도 자신을 변명할 수 없던 아들은 집에 와서 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뒷 녀석이 분명 또 그럴 거라며 "I didn't mean to hit you. It was him." 이 문장을 아들에게 외우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뒷 녀석은 또 장난을 걸었고, 의기양양하게 아들은 외운 문장을 앞 녀석과 선생님께 써먹었다고 한다. 아들이 대뜸 영어를 하자, 뒷 녀석은 놀라며 풀이 죽었더라나 뭐래나.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아들과 함께 통쾌한 박장대소를 날렸다. 우리는 죽이 잘 맞는 한 팀이기도 했다.


아들 어린 시절의 특별한 기억들 중 대미는 한국에 돌아와 녀석이 4학년 되어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게 되었을 때이다. 전 날 짐을 싸는데 신나지 않은지 마냥 한 숨이다. 워낙에 단체 생활을 싫어하는 성품이라 집 밖에서 친구들과 자는 게 마뜩잖아 그런가 했더니, 사실은 엄마 보고 싶으면 어떡하냐고 걱정이란다. 책상 서랍을 뒤져 엄마 증명사진 하나 찾아내더니 고이고이 가방에 챙겨 넣는다. 밤에 자기 전에 엄마 사진 보는 것으로 어떻게 참아 보겠다며. 자식 키우며 이만한 뿌듯함이 또 있을까 싶다. 아니, 세상에 어떤 타인이 나에게 이런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이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올해 고 3, 스무 살이다. 자고 일어나면 게임하기 바쁘고, 하루 중 절반은 이불속에서 뒹굴거린다. 변변한 외출 한 번 안 해도 소화는 문제없는지 세 끼니를 잘도 먹어치운다. 덕분에 점점 살이 붙어가고 있다. 초등 4학년 수련회의 기억이 대미가 된 건, 이후로 녀석이 자기주장이 강해지며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하겠다는 것이 녀석의 가치관이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아무리 거듭 강조를 해도 이제 녀석에겐 이 빠진 호랑이의 잔소리로밖엔 들리지 않나 보다. 그리도 섬세하고, 다정하고, 영특하던 녀석이 오늘날의 게으름뱅이가 된 사실이 여전히 납득이 안 되지만 어쩌겠나... 부모를 넘어서는 자식이길 바랬던 희망사항이 이루어진 걸로 치고 만다. 그래도 그 게으름뱅이 녀석이 언제나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함께 지나 온 세월을 걸고 맹세코 변함없는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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