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떻게 도시를 바꾸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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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기록

어셈블은 2010년 런던에서 결성된 다학제적 실천 그룹(multidisciplinary practice)으로, 건축·예술·디자인·공예·리서치 등 전혀 다른 배경의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현장에서의 실험을 통해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과거 도시 발전은 주로 물리적 구조와 기능적 설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전통적 ‘도시계획’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문제는 단순한 공간 설계나 기반시설 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커졌고, 1990~2000년대를 거치면서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도시재생은 도시를 삶의 기반으로 바라보고, 공동체 회복, 문화적 자산 보존, 사회적 관계의 재구성, 주민의 주체성 강화 등을 중요한 가치로 다룬다. 물리적 개선과 더불어, 사람·커뮤니티·지역 맥락을 중심에 두는 접근으로 확장된 것이다.


어셈블의 등장은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있다. 이들은 도시 문제를 단순히 건축적·공간적 과제가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공동생산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주민과 함께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도시재생이 제기했던 문제의식 <누가 도시를 만들고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이 어셈블의 실천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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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티브

어셈블이라는 조직에 대해 설명하려면 ‘콜렉티브(collective)’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콜렉티브란 공동의 문제의식이나 실천을 중심으로 모인 집합을 의미하고, 실천적 예술과 건축, 문화의 영역에서 더욱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콜렉티브라는 조직 형태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작업 환경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적 문제와 도시의 맥락이 다뤄지면서 작업의 대상은 더 이상 하나의 결과물이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과 관계, 시간과 과정으로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업은 필연적으로 불확실해지고, 실패의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고정된 조직 구조나 위계적인 시스템은 오히려 작업을 경직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어쩌면 콜렉티브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선택된 가장 현실적인 형태였을지 모른다.

콜렉티브는 프로젝트 단위로 결합하고 해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천적 예술과 도시 기반 작업은 프로젝트마다 요구되는 역할과 전문성이 크게 달라진다. 어떤 경우에는 리서치가 중심이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제작이나 관계 조정이 핵심이 된다. 고정된 팀을 유지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역할을 조합하고 유연하게 협업하는 구조가 더 적합했던 것이다. 콜렉티브는 이러한 유동성을 전제로 한 조직 형태였고, 그 덕분에 각자의 생계와 작업을 병행하면서도 공동의 실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셈블의 운영 방식

이러한 콜렉티브의 특성은 어셈블의 조직 운영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셈블은 특정 개인의 비전이나 리더십보다, 프로젝트를 통해 형성되는 공동의 판단과 합의가 조직을 움직이는 기준이 되었다. 누가 이끌고 있는가 보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멤버 구성 또한 고정적이지 않았다. 핵심적인 멤버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역할과 전문성에 맞춰 참여하는 구성원 역시 유동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구조는 조직의 비전이나 위계보다는 프로젝트마다 필요한 역할을 중심으로 협업이 가능하게 했다.

수익과 생계의 문제 역시 전통적인 조직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뤄진다. 안정적인 고정 급여가 아닌 프로젝트 단위로 발생되는 수익을 분배하는 구조이고, 콜렉티브 바깥에서 개인 작업이나 일을 병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는 불안정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조직의 성장을 무리하게 추구하지 않고 정체성을 지키는 장치이기도 했다.




대표 프로젝트

어셈블의 프로젝트는 완성된 결과물보다 과정(process)과 사람(community)에 더 무게를 둔다.
무언가를 빠르게 만들어내기보다, 주민과 함께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지역에 남아 있던 기술과 관계, 그리고 생산의 가능성을 다시 불러온다.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은 하나의 장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설과 공동체, 로컬 생산 체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매개로 작동한다.

어셈블의 작업은 언제나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가’를 질문하게 한다.

이제 그 질문이 드러나는 어셈블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려 한다.


Granby Four Streets(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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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by Four Streets는 영국 리버풀(Liverpool) Toxteth 지역의 오래된 주거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한때 활력이 넘치던 이 지역은 1980년대 경제 침체와 재개발 실패로 주택이 방치되고 공동체가 붕괴되며 유령 거리가 되었다. 주택의 절반 이상이 빈집이 되었고 주민 이주가 계속되던 시점에서 기존의 도시계획 방식은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있었다.

이때 남아 있던 주민들이 ‘우리가 직접 우리 동네를 살려보자’며 작은 관리를 시작했고, 이 흐름을 제도화하기 위해 Community Land Trust(CLT: 주민토지신탁)를 조직한다. 어셈블은 바로 이 주민으로부터 시작된 Granby Four Streets CLT와 협력하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2015년 Turner Prize를 수상한다.


프로그램과 활동

1. 10 Houses on Cairns Street : 빈집 재생 및 거주 공간 복원

Granby Four Streets CLT는 주택을 소유하여 재생하고 지역 주민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개별 주택들이 주민이 다시 살 수 있도록 복원·재활용되었고, 그 과정은 버려진 가구·자재를 수리하거나 재사용해 집을 고쳤고, 벽난로·창틀·타일 등을 직접 만들며 주민과 함께 작은 변화를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2. Winter Garden

방치되던 두 채의 주택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오래된 외형은 유지하되 내부를 투명 지붕과 식물이 자라는 구조로 바꾸어 실내 정원이자 주민들의 모임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이곳은 식물원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모이고 모임, 워크숍, 소규모 행사 등 비정형적인 활동들을 이어지는 공동체의 핵심 공간이 되었다.


3. Granby Workshop

어셈블과 주민들은 집을 고치는 과정에서 버려진 자재, 깨진 타일, 오래된 목재를 만났다.
이들은 폐기물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생각하고 타일, 도자기 손잡이, 조명, 벽 장식 등 인테리어 오브제를 제작하는 제작소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 주민들의 손기술이 다시 빛을 발했다. 취미로 하던 작업, 집을 고쳐본 경험, 목공이나 타일 제작 경험으로 제품이 만들어졌고 실제 판매되며 경제 활동으로도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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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y for a Flyover(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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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ly for a Flyover는 런던 Hackney Wick의 고가도로 아래 방치된 공간을 주민들과 함께 임시 문화공간으로 전환한 프로젝트다.

이 지역은 공업지대와 도로 사이에 끼어 있어 오랫동안 소외된 채 버려진 곳이었다. 어셈블은 이 단절된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임시 건축과 문화 프로그램을 결합해 지역의 관계와 상상력을 되살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먼저 고가도로 아래 남아 있던 작은 부지를 활용해 목재 구조의 건물을 세웠다. 그리고 이 건물은 영화 상영, 공연, 워크숍, 페스티벌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는 커뮤니티 중심 문화 플랫폼이 되었다. 여름철 6주간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 아티스트, 방문객들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장소성을 만들어냈다.


프로그램과 활동

1. 목재 구조물 제작 및 임시 극장 운영

고가도로 아래 조립식 목재로 작은 문화 건축물을 세워, 영화 상영과 공연이 열리는 임시 극장으로 활용했다. 밤에는 야외 영화관이 되고, 낮에는 주민들이 모이는 문화 공간으로 기능했다.


2. 주민 참여 워크숍과 커뮤니티 프로그램

도예, 공예, 어린이 창작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직접 운영·참여하며 공간을 ‘함께 만드는’ 경험이 이루어졌다.


3. 지역 축제 및 주말 행사

주말에는 지역 장터, 라이브 공연, 퍼포먼스 등이 이어지며 공간을 중심으로 지역의 활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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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neroleum(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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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neroleum은 폐주유소를 임시 영화관으로 전환한 어셈블의 초기 프로젝트로, 도시의 일상적·비활성화된 공간이 문화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새로운 장소로 재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실험이다.
런던 Clerkenwell에 위치한 이 폐주유소는 오랫동안 방치된 채 도심 속 ‘잉여 공간’에 가까웠고, 어셈블은 이 공간의 기존 구조를 그대로 활용해 저예산 DIY 영화관으로 재구성했다.

프로젝트는 지역 자원봉사자 60여 명의 참여로 진행되었으며, 패브릭으로 만든 외벽, 직접 제작한 의자와 조명, 디테일들이 공간을 채웠다.


프로그램과 활동

1. DIY 방식의 임시 영화관 제작

기존 주유소의 캐노피 구조를 유지하고 직접 제작한 천막·가구·조명 등으로 영화관 내부를 구성했다.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작업하며 공동 제작(co-production)이 구현된 사례로 볼 수 있다.


2. 영화 상영 프로그램

운영 기간 동안 지역 주민이 함께 모여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 프로그램이 이루어졌다.
상영 자체보다 ‘함께 모이고'. '경험을 나누는 행위’를 주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3. 자원봉사자 기반 운영

운영·기획·제작 대부분이 지역 자원봉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도시의 공공성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참여와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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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어셈블의 작업들에서는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려 한다.


1. 지역 자원 재해석과 시민 참여

어셈블의 작업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시민의 참여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지역 자원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많은 사례에서 ‘시민의 참여’는 결과나 성과 지표로 다뤄진다. 지역민에게 주체성을 부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의견을 묻거나 이미 정해진 가이드 안에서 참여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어셈블은 지역민의 기술과 경험, 관계를 지역의 자산으로 보고, 이를 생산과 경제 활동으로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이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재생의 과정 자체를 구성하는 주체로서 역할하고, 시민참여는 공간과 결과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생산(co-production)의 과정으로 전환된다.


2. 임시적 공간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공간에 임시적으로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임시성은 미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간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그 장소가 지역 활성화와 문화적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 분야에서 논의되어 온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택티컬 어바니즘은 대규모 개발이나 장기 계획에 앞서, 작고 빠른 개입을 통해 공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임시적인 구조물이나 가벼운 프로그램, 제한된 기간 동안의 사용을 통해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하는지를 관찰하는 접근이다.

하지만 택티컬 어바니즘의 의미를 반드시 명확한 개발 목적이나 결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임시적인 개입은 공간 이용자 통계, 이용자의 행동과 관계, 머무름과 이동의 패턴, 그리고 장소가 지닌 잠재력을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과 관찰은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없더라도 도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국내의 문화예술 정책은 지역과 일상의 영역에서 생활문화와 공동체예술을 통해 문화적 참여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도시재생이나 지역문화 정책의 맥락에서도 주민 참여와 문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반복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문화예술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으로 확장하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를 지니지만, 구조상 참여 인원이나 운영 횟수와 같은 가시적인 지표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고, 활동이 지역에 어떤 변화와 축적을 남겼는지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는 한계도 함께 드러난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달리, 정책적으로 강한 지지를 얻기 어려운 이유 역시 이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셈블의 작업은 이 지점에서 문화예술이 작동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의 프로젝트에서 예술은 도시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기능한다.
임시적인 공간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머무르며, 공간을 사용하는지를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은 공간의 향후 용도나 계획을 고민하는 근거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제작과 생산의 과정은 일회성 참여를 넘어 공동체 기반의 경제 활동으로 확장된다. 주민의 기술과 경험이 실제 생산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가 다시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는 문화예술이 단순한 향유의 차원을 넘어 지역과 공간 재생의 실질적인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Granby Four Streets 이후 어셈블의 작업은 공공 건축, 문화 시설, 교육과 생산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구조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공간의 규칙과 형태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Baltic Street Adventure Playground에서는 디자인보다 운영 방식과 권한 배분이 주로 다루어졌고, Sugarhouse Studios와 같은 프로젝트에서는 창작 공간을 만드는 데서 더 나아가 예술가의 작업과 생계가 지속될 수 있는 운영 구조를 고민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어셈블의 작업들에서 문화예술의 가능성을 도시재생의 영역까지 확장해 볼 수 있다. 문화예술정책이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데서 나아가 공간을 읽고, 관계를 조직하며, 지속 가능한 구조를 탐색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Assemble Studio (https://assemblestudio.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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