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떻게 도시를 바꾸는가 #3

세토내해 예술 클러스터 / ART HOUSE PROJECT

by 도시기록

예술이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예술은 오랫동안 ‘지원의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

도시와 지역문화의 영역에서 예술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오래전부터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지만,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인식 또한 강하게 자리해 왔다. 이러한 인식은 예술을 공공의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영역으로 규정하는 정책적 접근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많은 예술 정책은 창작 지원금, 예술단체 육성, 공연장과 미술관 같은 공간 인프라 확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예술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도였겠지만, 동시에 예술 활동이 공공 재정에 의존하는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측면도 함께 만들어냈다.

이러한 흐름은 전문예술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동체예술이나 생활문화처럼 사회적 관계 회복과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접근, 혹은 예술교육을 중심으로 예술의 가치를 확장하려는 정책들 역시 꾸준히 개발되어 왔지만, 이들 또한 시장 논리와는 거리를 둔 채 정책 자금에 기반해 작동해 온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공공 주도적 구조 속에서 예술 활동은 개별 프로젝트나 단년도 사업 단위로 분절되기 쉬웠고, 정책 담당자나 의사결정권자의 변화, 혹은 정책 기조의 전환에 따라 지속성이 흔들리는 경우도 반복되어 왔다. 자생적인 움직임이 축적되기보다, 매번 새로운 지원 체계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흐름과는 다르게 예술을 지역의 구조와 경제를 재편하는 동력으로 삼은 시도가 있다. 바로 일본의 '세토내해 예술 클러스터'다.

나오시마에서 시작된 예술적 시도는 하나의 프로젝트나 단발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점차 인근 섬들로 확장되며 군도 전체를 하나의 예술 클러스터로 엮어냈다. 그리고 예술은 더 이상 향유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관광과 숙박, 교통, 소비를 이끌어내는 축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토내해 예술 클러스터는 현재까지도 상당한 규모의 방문객을 유입시키며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S0A2200-1600x1067.jpeg
b210427003-banner-size.jpeg
naoshima-3.jpeg
베네세 하우스와 나오시마

나오시마(Naoshima)와 베네세 그룹(Benesse Holdings)

세토내해 예술 클러스터의 시발점으로 나오시마와 베네세 그룹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나오시마는 일본 가가와현 세토내해(瀬戸内海)에 위치한 약 8㎢ 정도의 작은 섬으로, 과거 어업·해양 운송·제염·광업 같은 1차 산업이 기반이 되었던 섬이었지만, 20세기 중후반부터 산업 기반 쇠퇴와 함께 인구가 감소되어 1995년 약 4,162명이던 인구가 2020년에는 약 3,100명 정도로 감소했다. 전형적인 소규모 도서 지역의 인구 감소·고령화로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섬이 침체되어 가던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 교육·출판 기업인 베네세 그룹이 나오시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베네세는 1989년에 국제 캠프 시설(Naoshima International Camp)을 개설한 데 이어, 1992년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Benesse House Museum)을 개관했다. 이는 호텔과 미술관이 결합된 형태로, 자연·건축·예술의 공존을 지향하는 공간이었다.

베네세 하우스는 나오시마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경제적 움직임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겠다. 섬 곳곳의 자연경관과 건축, 그리고 설치 작품이 결합된 이 구조는 외부 방문객을 섬으로 유입시키는 새로운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베네세는 1998년부터 전통 가옥·빈집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를 비롯해 섬 전역에서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이어갔고, 2004년에는 지중미술관(Chichu Art Museum)을 개관하면서 나오시마의 예술 거점은 더욱 확장됐다.


베네세 그룹은 영리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성과 수요가 집중된 대도시가 아닌 나오시마라는 쇠퇴한 섬을 선택했다. 공식적으로 베네세는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관광 개발이 아닌, 자연·건축·예술이 결합된 삶의 환경에 대한 실험으로 설명해 왔다. 일반적인 입지 전략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이 선택은, 베네세가 추구해 온 가치와 정체성을 가장 온전히 펼쳐낼 수 있었던 선택이었던 것이다.


スクリーンショット-2024-12-05-7.12.25.png
honmura_la_1.jpeg
kadoya_960x640.jpeg
나오시마의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ART HOUSE PROJECT)

1990년대 후반, 나오시마의 혼무라 지구에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사람이 살지 않는 전통 가옥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베네세 그룹은 이 빈집들을 철거하거나 새로운 시설로 대체하기보다, 기존의 마을 구조를 유지한 채 그 안에 예술을 들여오는 방식을 선택했다.


1998년, 혼무라 지구의 오래된 민가 ‘가도야(Kadoya)’를 개조한 첫 번째 아트하우스가 공개되었다.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를 통과하는 대신, 주민들이 오가는 골목과 생활의 흔적을 지나 작품을 마주한다.

초기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는 한 번에 여러 공간을 조성하지 않았다. 작품 수도 제한적으로 유지되었다. 티켓 발권, 안내, 관리 인력 배치와 같은 요소들은 사전에 완벽하게 설계되기보다, 실제 이용 상황에 따라 조정되면서 점진적으로 구축되었다.

이 시점까지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는 베네세 그룹의 주도로 진행되었고, 공공의 제도적 지원이나 예산 투입은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중단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숙박과 식사, 이동을 함께 경험하게 되면서 예술을 매개로 한 체류 사이클을 형성했다.

828ba269fa4b9799b7dbe0a13065121c_l.jpeg
9075499352_7498a7f8d3_b.jpeg
테시마, 이누지마의 전시

이러한 경험은 나오시마 내부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후 인근의 '테시마(Teshima)'와 '이누지마(Inujima)'에서도 빈집과 기존 건축을 활용한 소규모 예술 공간 조성, 섬의 라이프스타일을 전제로 한 관람 방식 등 유사한 접근이 이어졌다. 다만 이 과정은 나오시마 모델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각 섬의 조건과 문제의식에 맞게 변형된 실험에 가까웠다.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는 이처럼 작은 공간 실험에서 출발해, 장기 운영이 가능한 모델로 서서히 자리 잡았다. 이 축적된 경험은 이후 더 큰 논의로 확장될 수 있는 현실적인 기반이 되었다.


기타카와 프람과 가가와현, 그리고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나오시마와 인근 섬들에서 축적된 예술적 실험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방문객 역시 각 섬을 단편적으로 경험하는 데 그쳤다. 이 섬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재조직한 계기가 바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이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2010년, '가가와현'이 주최하고 예술감독 '기타카와 프람'이 총괄하며 시작되었다. 이 예술제는 단일 장소나 지역에 작품을 집중시키는 기존의 비엔날레 형식과 달리, 세토내해에 흩어진 여러 섬과 해안 지역을 무대로 삼았다. 관람객은 배를 타고 섬과 섬을 이동하며 예술을 경험하게 된다. 이동 자체가 감상의 일부가 되는 구조인 것이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감독 기타카와 프람과 가가와현의 역할을 빼놓기 어렵다.

기타카와 프람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시 기획자이자 아트 디렉터로, 지역과 예술의 관계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뤄 온 인물이다. 그의 기획에서 핵심은 예술을 통해 장소의 풍경과 시간이 함께 경험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세토내해의 고령화, 인구 감소, 산업 쇠퇴 같은 환경을 특별히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예술의 배경으로 남도록 했다. 작품은 그 장소에 머무르며 지역을 체감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가가와현은 나오시마·테시마·쇼도시마 등 세토내해에 흩어진 여러 섬과 연안을 관할하는 광역 행정 단위다. 가가와현은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통해 특정한 개발 모델을 일괄적으로 적용하지 않았다. 대신 예술제라는 하나의 틀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각 섬과 기초 지자체가 자신들의 조건과 판단에 따라 참여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섬은 기존의 상설 예술 공간을 중심으로 운영을 이어갔고, 어떤 지역은 예술제 기간에만 한정된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이에 따라 운영 주체 역시 민간 기업, 지자체, 주민 조직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그리고 가가와현의 역할은 교통 체계 정비, 홍보, 행정 절차 지원 등을 통해 흩어진 시도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33_project_setogei_map_02.jpg
FC_20210724_0030_1200x1200.jpg?v=1627194798
Setouchi-Triennale-2013-poster.jpeg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지도와 홍보물

그렇게 만들어진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2010년 첫 개최 이후 3년마다 세토내해의 여러 섬과 항구를 무대로 펼쳐졌다. 각 회차는 봄·여름·가을 세 시즌 약 100일가량 진행되며, 19년부터는 연간 1백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국제적인 현대 미술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2025년에는 약 260개의 작품이 섬과 항구 전역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경제적 효과 또한 상당하여, 2019년 기준으로 약 180억 엔 이상의 지역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22_06_IMG_3643.jpeg
250610_naoshima_19.jpeg
250610_naoshima_25.jpeg
250610_megijima_06.jpeg
250610_megijima_09.jpeg
250610_ogijima_09.jpeg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풍경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국제적인 페스티벌로 성장하며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그 수익이 직접적으로 지역 재생이나 창작자 지원으로 환원되는 구조는 명확하지 않다. 섬이 알려지며 브랜딩 되고 관련 산업이 유입되고, 작가들이 정주할 작업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지역 생태계가 형성되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재생 담론의 서사는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일부 작가들의 단기 체류나 레지던시가 있었고, 예술제 운영과 관광을 중심으로 한 관련 일자리가 제한적으로 창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창작자 집적이나 예술 산업의 확장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불편한 교통, 부족한 생활 인프라 같은 현실적인 한계도 작용했겠지만, 동시에 예술이 지역을 점유하거나 새로운 경제 논리를 밀어 넣기보다, 기존의 삶과 풍경을 존중하며 유지하려는 기획적 선택 역시 분명히 읽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성과일까 지속가능한 구조일까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은 한국으로 돌아온다. 왜 우리에게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거의 축적되지 못했을까. 이는 한국의 문화 정책과 행정 구조가 가진 한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한국의 지역 문화 사업은 대체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압박 속에서 설계된다. 방문객 수, 언론 노출, 행사 횟수처럼 즉각적으로 측정 가능한 지표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지만, 시간이 쌓여야만 드러나는 변화는 성과로 포착되기 어렵다. 그 결과, 긴 호흡을 전제로 한 실험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는 정책 기조와 결정권자의 잦은 변화다. 지자체장이나 담당 부서가 바뀔 때마다 사업의 방향은 쉽게 수정되거나 재정의된다. 처음에는 잘 설계된 프로젝트도 몇 해 지나지 않아 전혀 다른 목적과 언어로 포장되며 본래의 가치가 희석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공공은 ‘지원자’보다는 ‘관리자’로 기능한다. 예산을 집행하는 주체로서 책임을 져야 하기에, 개별 콘텐츠의 내용과 방식에까지 개입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퀄리티 관리, 민원 대응, 정치적 리스크를 이유로 한 미시적 통제는 점점 강화되고, 그 결과 실제 주체들의 판단과 선택지는 좁아진다.

반면 세토우치의 경우, 공공은 구조를 설계하는 중간자로 기능했다. 서로 다른 주체들이 연결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교통·행정·홍보 같은 자원을 엮어 전체 흐름을 형성했다. 덕분에 개별 섬의 선택은 존중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benesse-artsite (https://benesse-artsite.jp/)

japan-guide (https://www.japan-guide.com/)

setouchi-artfest (https://setouchi-artfest.jp/)

작가의 이전글예술은 어떻게 도시를 바꾸는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