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떻게 도시를 바꾸는가 #4

Project Row Houses

by 도시기록

정책의 틈을 예술이 메울 수 있을까


정책은 대개 나이, 소득, 가구 형태 같은 분류가 먼저 놓이고, 그에 맞는 서비스가 각각 분리된 채 공급된다. 주거는 주거대로, 돌봄은 돌봄대로, 교육과 문화는 또 각자의 이름으로 제공된다.

우리는 이런 방식의 정책 집행에 꽤 오래 익숙해져 왔다.

함께 시너지 내지 못하고, 그저 각자의 할 일을 할 뿐인 정책들 말이다.


그런데 복합적이고 유기적인 삶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참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정책이 동시에 작동할 때 삶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하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이미 이런 질문을 던졌던 한 사례에 대한 것이다.

바로 'Project Row Houses'다.


이 프로젝트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것도,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이나 문화시설을 공급하는 정책도 아니다. 예술적 실천이라는 비교적 느슨한 방식으로, 주거와 교육, 문화와 공동체가 하나의 생활 환경 안에서 함께 작동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 사례에 가깝다.

이 프로젝트가 분절된 정책이 닿지 못했던 틈을 어떻게 메웠는지, 그리고 그 방식이 오늘날 마을·골목 단위의 정책과 사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왜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image.png

Project Row Houses

Project Row Houses가 시작된 곳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Third Ward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흑인 커뮤니티의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곳이었지만,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도시의 주변부로 밀려나며 빠르게 낙후되고 있었다. 당시 Third Ward는 주거 환경이 열악했지만, 그렇다고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질 만큼의 관심을 받지도 못했다. 주거·교육·돌봄 정책은 분절되어 개별 프로그램 단위로 공급되었고,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가 탄탄하게 축적된 지역이었지만, 도심의 공연장·박물관 등 제도권의 틀 안에서 문화 정책을 다루는 경향이 강했다.


한쪽에서는 철거와 재개발이 논의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최소한의 정책 프로그램이 제공되면서, 어느 쪽도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때에, Project Row Houses는 이 환경 안에서 삶이 지속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했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전면적인 변화가 아닌, 버려지다시피 한 연속형 주택(row house, ‘shotgun house’라 불리기도 한다)을 하나씩 다시 사용해보는 일이었다.

주거 문제를 주거 정책으로만 풀지 않았고, 문화와 교육, 돌봄 역시 개별 프로그램으로 분리하지 않은 채, 같은 생활 환경 안에 겹쳐 놓는 방식을 택했다. 문제를 분류하고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환경 자체를 다루려 했던 것이다.


Rick Lowe와 6인의 예술가

Project Row Houses의 시작에는 7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Rick Lowe'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로 소개했지만, 그가 다루던 것은 캔버스가 아니라 사람과 장소, 관계였다.

그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역을 분석하지도 않았고, 이 지역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대신, 이미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 동네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는지를 관찰했다. 그리고 그곳의 집들이 조금만 손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Drive-by-Exhibit-at-PRH-Installation-of-Image-by-Israel-McCloud-1993-courtesy-of-Project-Row-Houses-scaled-wpp1640115450853.jpeg

Project Row Houses의 첫 시작은 소박했다.
1993년, 7인의 예술가들은 허물어져가는 몇 채의 연속형 주택을 확보하고, 이를 철거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수리를 거쳐 다시 사용했다.
이 공간들은 처음부터 명확한 용도로 규정되지 않았다. 전시장이 될 수도 있었고, 누군가의 거처가 될 수도 있었으며, 동네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했다. 기능은 느슨하게 열려있었고,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불확정성이 Project Row Houses의 초기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를 주도했던 Rick Lowe의 역할도 일반적인 기획자나 운영자와 달랐다. 그는 프로그램을 통제하거나 공간의 쓰임을 세세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이 공간을 기반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사용과 선택이 쌓이며 조금씩 방향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느리지만 그만큼 지역의 맥락과 쉽게 분리되지 않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image.png
Round 46_ Black Women Artists for Black Lives Matter at Project Row Houses, Project Row Houses, March 25 - June 4, 2017. Photo by Alex Barber .jpeg

사회적 조각

Rick Lowe가 Project Row Houses를 구상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준 개념 중 하나는 독일 예술가 Joseph Beuys가 제시한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이다.
이 개념은 예술을 완성된 작품이나 전시 결과물로 보지 않고, 사람과 관계, 제도와 환경이 형성되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조형 행위로 이해하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형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재료라는 인식이다.

Rick Lowe는 이 개념을 현실의 공간과 삶의 조건 안에서 풀어냈다. 그에게 예술은 어떤 환경이 가능해지도록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고, 예술적 실천은 주택을 유지하고, 관계가 맺어지고, 사람들이 머물고 오갈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 지점에서 예술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책과 제도가 다루지 못한 삶의 조건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해보는 실험이 된 것이다.




image.png

어떤 구조로 지속되었나

시간이 흐르면서 공간의 쓰임도, 참여하는 사람도, 프로그램의 성격도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Project Row Houses는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1. 운영방식

앞서 말했듯, Project Row Houses는 처음부터 하나의 고정된 운영 모델을 전제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보다 공간이 ‘사용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도록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전시나 레지던시,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필요와 여건(재정, 공간, 인력, 주민과의 합의 등이 여기에 포함되겠다.)이 맞을 때 생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축소되거나 중단되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없는 시기에도 공간은 열려있었고, 사람들의 관계는 계속 이어졌다.


2. 수익구조

조성된 주거 공간의 임대, 소규모 비즈니스와 조직 인큐베이팅, 전시와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은 공간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운영비로 사용되었다. 인큐베이팅은 Third Ward와 관계를 맺고 장기적으로 활동할 의지가 있는 소규모 주체들에게 낮은 비용으로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3. 조직형태와 목적

초기에는 Rick Lowe를 포함한 예술가 집단이 기획과 실행, 공간 관리까지 맡아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역할 구분 마저도 느슨했던 비공식적인 이 그룹은, 1994년 프로젝트가 확장되면서 비영리 조직으로 공식화되었고, 상근 인력과 이사회, 행정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조직이 제도화된 이후에도 조직의 성장이나 사업의 확장보다 공간과 환경, 관계에 대한 태도가 우선시 되었다.


4. 주택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Project Row Houses는 초기에 아주 낮은 비용으로 주택 일부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일부는 소유권 이전 없이 장기 사용 권한과 관리 책임을 함께 맡기도 하였다. 당시 이 지역의 주택들은 시장과 정책에서 방치된 경우가 많았고, 법적으로도 소유권 정리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프로젝트가 구조를 갖추고 공공·민간 지원이 결합되기 시작하면서, 운영의 안정성이 필요한 핵심 공간들에 한해 비영리 조직 명의로 소유권이 점차 정리되었다.


이렇게 보면 Project Row Houses의 지속성은 탁월한 하나의 운영 모델 나은 결과라기보다, 운영과 소유를 유연하게 다루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온 이 프로젝트는, 변화와 혁신, 성과를 끊임없이 요구받는 대부분의 기준에서 보면 방향도 불분명하고 목표도 느슨한 실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느슨함이 Project Row Houses를 지금까지 존속하게 만든 힘이었다.




Project Row Houses는 주거, 문화, 돌봄, 공동체를 하나의 생활 환경 안에서 다루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했다. 다만 이 프로젝트의 실행 방식은 고정되거나 계획되기 보다는, 여건에 따라 조정 되는 구조에 가까웠다. 이러한 유연성은 프로젝트가 장기간 존속하는 데에 유리했을 수 있지만, 주민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바뀌는 환경에 피로감이 축적되었을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지점은 한국의 지역 기반 조직들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조직들이 정책과 지원사업의 변화에 맞춰 사업의 내용과 언어를 조정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의식을 그나마 닿을 수 있는 정책의 틀 안에서 번역해온 결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질문은 “유연했는가, 아니었는가”가 아니라 “그 유연함이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가”로 옮겨져야 한다. 프로그램과 형식은 바뀌었지만, 공간을 대하는 태도, 주민과 관계를 맺는 방식, 삶의 조건을 바라보는 기준은 얼마나 유지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실제로 주민의 일상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냈는가.

만약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관계'니 '환경'이니 하는 언어들은 그저 연명을 위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Project Row Houses가 가능했던 조건에는 당시 Third Ward에 대한 시장의 낮은 관심, 느슨한 소유 구조와 같은 환경이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접근성과 인프라가 일정 수준만 확보되어도 기대 가치가 빠르게 가격에 반영되고, 소유를 통한 개입은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 압력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사례를 단순이식하려는 시도는 부디 없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이 사례를 들여다본 이유는, 정책과 사업이 무엇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명확히 던지기 때문이다. 성과를 설계하기 전에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남아야 하는가'에 대해 먼저 묻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말이다.


https://youtu.be/uUhYb7SoMzU


이미지 출처

Project Row Houses (https://projectrowhouses.org/)

작가의 이전글예술은 어떻게 도시를 바꾸는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