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떻게 도시를 바꾸는가 #6

High Line Project

by 도시기록

비어 있는 공간, 쓰이지 않는 건물, 기능을 잃은 시설...

우리는 이런 유휴공간을 보면 무엇을 채워 넣을지 떠올린다. 쓰임을 잃은 공간은 재생의 출발점이 되고, 창조적 실험의 무대가 되며, 도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산업은 밀려났고, 어떤 정책은 좌초됐고, 어떤 시장의 흐름은 바뀌었으며, 누군가는 이익을 기대하고, 누군가는 불안을 느끼며, 서로 다른 요구가 켜켜이 쌓인 공간일 수 있다.

유휴공간 재생을 이야기할 때 교과서처럼 인용되는 사례가 있다.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이다.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산업 유산, 폐철로를 공원으로 바꾼 창조적 재생,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의 새로운 경험.

그러나 그 이면을 함께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성공이 어떤 정치적 흐름 속에서 가능했는지, 어떤 입지적 조건이 있었는지, 그 안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었는지 말이다.


뉴욕의 하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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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서쪽을 따라 놓인 고가 화물 철도는 1930년대 산업 물류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철로는 점차 기능을 잃었고 199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 운행이 중단되었다. 남은 것은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 구조물이었다. 안전 문제와 유지 비용을 이유로 철거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이던 시점, 1999년 두 명의 시민 Joshua David(작가&도시보존활동가), Robert Hammond(예술&커뮤니티 활동가)이 공청회에서 만난다. 그리고 이들은 훗날 Friends of the High Line(하이라인을 지키고 운영하는 비영리 시민단체)을 결성하고 철거 반대 운동을 시작한다.

처음엔 산업 유산으로서의 가치, 도시에서 보기 드문 입체적 공간 경험, 그리고 사라질 뻔한 장소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되었다. 거창한 비전보다는 '이 독특한 철 구조물을 지키자'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보존 운동은 점차 전략적으로 진화했다. 단순한 철거 반대를 넘어 ‘공원화’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제 디자인 공모를 추진하며 경제적 효과를 수치로 제시했다.

하이라인을 유휴공간 재생 사례로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곳은 청년 창업 공간도, 지역 주민 커뮤니티 시설도, 상업시설 중심의 복합개발도 아니었다. 핵심은 ‘걷는 공간’이었고, 기능은 최소화했다. 이렇게 대상과 기능을 열어둔 설계는 결과적으로 확장성을 낳았고, 주민도, 관광객도, 직장인도, 예술 애호가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공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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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s of the High Line

2004년 국제 설계 공모를 통해 설계팀이 선정되었고, 기존 철로의 구조와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공원화가 추진되었다. 새 길을 덧입히는 대신 레일과 자생적 생태 풍경을 재해석하는 방식이었고, 과거의 산업적 기억을 남겨둔 채로 새로운 도시 경험을 제안한 것이다.

공원은 뉴욕시의 공공 자산이 되었지만, 운영의 중심에는 여전히 Friends of the High Line이 있었다. 유지관리, 프로그램 기획, 모금과 자원봉사 조직까지 이 시민 단체가 맡아 진행하였다. 하이라인은 단순한 산책로에 머물지 않고 공공 예술 프로그램, 야외 전시, 교육 프로그램, 시민 참여 행사 등이 지속적으로 기획되며 공간은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작동해 왔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비영리단체의 운영 구조다. 하이라인의 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상당 부분의 예산은 민간 기부와 후원을 통해 마련된다. 개인 기부자와 재단, 기업 후원, 멤버십 프로그램 등이 주요 재원이며, 일부는 투자 수익과 프로그램 관련 수입으로 충당된다.

이러한 대규모 모금이 가능한 것은 하이라인이 뉴욕을 대표하는 상징적 공공 공간으로 자리 잡은데 있다. 연간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고, 주변에는 고가의 부동산과 대형 개발 프로젝트가 밀집해 있으며, 기업과 재단 입장에서도 후원이 곧 도시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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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뒤에 숨겨진 이야기

그렇다면, 부동산 개발이 요구되던 이곳이 어떻게 공원화될 수 있었을까?

철거를 계획하던 공공은 왜 갑자기 국제 디자인 공모를 지원하게 되었을까?

1990년대 후반, High Line 이 지나는 맨해튼 서쪽 일대는 이미 변화의 기류 속에 있었다. 제조업이 빠져나간 자리에 갤러리와 스튜디오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첼시는 점차 예술 지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철로는 연방 소유였고 도시는 이를 철거하기 위한 행정 절차를 밟고 있었다. Joshua David와 Robert Hammond가 만난 공청회는 그 과정의 일부였다. 그렇게 시작된 Friends of the High Line은 철거 반대를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레일뱅킹(Railbanking / 사용이 중단된 철도 노선을 ‘완전히 폐선’ 하지 않고, 법적으로 보존해 두는 제도)’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철로를 공공 자산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동시에 경제 분석을 통해 공원이 조성될 경우 인근 부동산 가치와 세수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2000년대 초, 뉴욕시는 정치적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Michael Bloomberg 행정부는 마침 도시 경쟁력과 브랜드 강화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고, 문화 자산과 공공 공간은 그 전략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첼시 갤러리 지구의 성장, 수변 접근성 개선 논의, 이후 진행될 대규모 개발 구상 등 입지적 잠재력이 겹쳤고, 보존 운동은 이 정치적·경제적 맥락과 만나며 공공 투자의 정당성을 얻게 된다.

하이라인이 도시 경험을 바꾼 것은 사실이다. 폐철로는 공공 산책로가 되었고, 도시의 산업적 기억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방문객이 늘고 상징성이 강화되면서 하이라인도 젠트리피케이션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부동산 개발에 저항하며 시작된 이 움직임도 결과적으로 임대료 상승과 개발 가속화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Robert Hammond는 인터뷰에서 “의도와 달리 작동한 측면이 있다”라고 언급하며, 특히 주택 문제에 대해 더 빨리,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점을 돌아보기도 했으며, 실제로 High Line Network를 운영하며 공공공간 조성이 지역의 형평성과 비이주(anti-displacement) 전략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하이라인의 사례를 들여다보며 두 가지 생각이 남는다.


유휴공간 재생에 앞서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유휴공간은 단순히 비어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 안에는 산업의 쇠퇴가 있고, 정책의 실패가 있고, 시장의 외면이 있으며, 지역이 지나온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삶을 이어왔고, 누군가는 그곳을 떠났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가능성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공간을 ‘채워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어떤 기능을 넣을지, 어떤 콘텐츠를 얹을지, 어떻게 그럴듯하게 꾸밀 것인지에 집중한다. 그 결과 외형은 그럴듯해도 하루에 몇 명 찾지 않는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맥락을 읽지 못한 채 덧씌워진 기획은 오히려 그 공간이 지니고 있던 잠재력과 서사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비어 있다는 건 문제라기보다 질문일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빨리 답을 내버리는 것은 아닐까.


선한 의도가 언제나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역이 개선되고 도시는 활기를 찾는다. 성공적인 재생 사례로 언급되고 미디어도 빠르게 퍼 나른다. 방문객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임대료가 오른다. 주민은 이탈하고 새로운 자본이 유입된다. 어느새 지역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제서야 '아, 젠트리피케이션!' 한참이나 늦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이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하이라인의 경우, 그 이후에 형평성과 비이주 전략을 논의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언급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물론 그것이 충분했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최소한의 담론은 열려 있었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재생 이후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시장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명확히 책임을 지거나, 그 흐름을 늦추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이것은 단지 개별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재생을 프로젝트 단위로 설계하는 정책 구조와 토지·주거 정책이 분리되어 있는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도시를 변화시키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공간이 바뀌고, 사람이 움직이고, 기대는 가격이 되고, 가격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재생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너무 빨리 성과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멋진 기획보다 필요한 건 충분히 질문하고, 충분히 이해하고, 충분히 고민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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