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04
앵무새는 오늘도 분주했다.
아침부터 물바가지에 들어가 목욕하고 있었다.
앵무새는 물장구를 첨벙첨벙치며 노래를 불렀다.
"아침엔 바나나래"
"아침엔 바나나래"
조금 뒤, 앵무새는 물 밖으로 나와,
반짝이는 깃털을 뽐내며 노래했다.
"사진찍어"
"사진찍어"
그때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앵무새는 귀를 쫑긋 세웠다.
"오늘, 씨앗쿠키 완판됐데."
"정말? 어제도 5분 만에 다 팔렸다며."
앵무새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씨앗쿠키 사야 해."
"씨앗쿠키 꼭 사고 말 거야."
앵무새는 원래 오늘, 새로운 노래를 배우려 했지만,
씨앗쿠키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몸을 뉘인 채,
앵무새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고양이가 말했다.
"넌, 어제도 씨앗쿠키 먹다가 남겼잖아."
앵무새가 날갯짓을 파닥파닥거리며 말했다.
"인스타에 못 올렸어"
"해시태그는 씨앗쿠키"
"해시태그는 씨앗쿠키"
고양이는 들은 체 만 체 조용히 자신의 털만 빗질했다.
앵무새가 눈앞의 작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짹짹! 고양이, 춤춘다."
"짹짹! 강아지, 종이컵 뛰어넘는다."
앵무새가 갑자기 고양이에게 물었다.
"고양이야, 너도 얘네처럼 뭔가 해야 하지 않아?"
고양이가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며, 앵무새에게 물었다.
"어떤 걸 하는데?"
앵무새는 기억이 나지 않자, 그저 익숙한 말만 반복했다.
"재밌어"
"재밌어"
고양이는 창가에서 내려와 캣타워를 지나치곤,
자신이 좋아하는 선반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앵무새가 고양이에게 다시 물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널 보지 않을 거야!"
고양이는 날아다니는 초파리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난 굳이 보이려고 살진 않아.
내 기분 편한 게 먼저야."
앵무새는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은 나를 드러내야,
좋아요 많이 받고, 스카우트 돼."
고양이는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앵무새는 오늘 처음으로 잠시 조용해졌다.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날 저녁, 앵무새는 자신의 깃털을 뽑으며 말했다.
"저녁엔 바나나래"
깃털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고양이는 앵무새 옆에 조용히 다가와 잠시 앉았다가,
말없이 자리를 떴다.
앵무새는 깃털 하나를 더 뽑으며 중얼거렸다.
"저녁엔 바나나래..."
우리는 종종 앵무새처럼 살아간다.
우월해 보이고 싶은 욕망과 유행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조급함.
하지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지 물어봐야 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고양이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다.
앵무새처럼 사는 삶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선택들이 내가 원한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하길래 그저 따라 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보여지기 위한 삶' 이전에
'원하는 삶'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기준을 복사•붙여넣기 하지 않는다면,
분주함조차 온전히 나의 삶이 된다.
보이는 부분만 신경 쓰다,
스스로에게 집중할 시간을 놓치게 되면,
남는 것은 내가 아니라,
누군지도 모를 남의 모습일 수 있다.
어떻게 보여지는지 신경쓰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챙기자.
누구나 반복하고, 따라만 하는 앵무새가 될 수 있다.
그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이걸 왜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시선을 따라가거나,
어떤이의 잘 사는 삶보다,
내가 어떤 기준과 감각으로 보고, 소비하는지,
더 신경써보자.
어쩌면 정말 필요한 건,
보여주기 위해 깃털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날개가 어디를 향하고 싶은지 살펴보는 일일지 모른다.
나는 왜 이것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