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한 아기펭귄

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01

by 이루나

전날 저녁부터, 아기펭귄은 잠을 설쳤다.

내일은 처음으로 바다로 출근하는 날이다.


그동안, 몇 번이나,

바다 근처까지 나가는 연습을 하면서,

수없이 얼음 위를 넘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아기펭귄은 혼잣말을 하며 울음을 삼켰다.

"앗, 또 넘어졌어."

"이렇게 자꾸 넘어지는 데,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


옆에 있던 선배 펭귄이,

넘어진 아기펭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또 일어나서 걸어봐"


어느덧, 시간이 지나,

아기펭귄에게도 출근하는 날이 다가왔다.


아기펭귄은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차가운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드디어, 첫 출근 날 아침,

아기펭귄은 다른 또래 펭귄과 선배들을 따라나섰다.


그들과 함께 뒤섞인 채,

힘차게 발돋움을 하며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힘을 너무 줬는지, 출근길부터 약간 삐끗했다.


헤엄치는 것도 서툴러 처음부터 우왕좌왕했다.

앞으로 가고 싶었는데, 무거운 물살에 몸이 자꾸 뒤로 밀렸다.


아기펭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 생각대로 헤엄치는 것이 왜 이리 어렵지?'


그때, 멀리서 응원해 주는 부모님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여,

다시 날개에 힘을 잔뜩 주었다.


조금 뒤, 무리에서 멀어져 혼자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

무리를 이끄는 책임 펭귄이 다가와 말을 던지고, 이내 사라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눈치 안 챙겨?"


"네, 알겠습니다.."

아기펭귄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다시 무리의 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작은 새우를 사냥하던 아기펭귄이,

옆에 있던 선임 펭귄에게 물었다.

"물고기나 오징어는 어떻게 잡을 수 있어요?"


선임 펭귄은 아기펭귄의 말에 크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첫날부터 야먕이 크네, 벌써부터 큰 걸 잡으려고?"

선임 펭귄은 말이 끝나자마자 재빠르게 사냥하러 자리를 떴다.


아기펭귄은 그냥 방법을 알고 싶어 물어본 것뿐인데,

왜 웃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웃지? 내가 너무 성급했나?'


그날 저녁, 다 같이 얼음 위로 올라와 퇴근했다.


아기펭귄의 힘겨운 발걸음을 느낀,

선배 펭귄이 다가와 물었다.

"오늘 어땠어?"


아기펭귄이 답했다.

"다들 바빠 보여서 말 걸기도 어려웠어요,

저는 언제쯤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요?"


선배 펭귄은 아기펭귄의 질문에 답했다.

"우선은, 바닷속에서 잘 견디면서 헤엄치는 것이 먼저야.

그런 뒤에 작은 물고기부터 하나씩 잡으면 돼."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제 시작했잖아"


다음 날 아침, 아기펭귄은 다시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오늘은 출근길 슬라이딩이 좀 더 매끄러웠던 것 같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서툴다.

어른이 되어서도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주변에선 각기 다른 시선으로 다가온다.


걱정이라는 이름 아래,

하지 말라고 하던가.


자기 일도 아니면서,

그런 건 뭐 하려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단지, 궁금해서 한 질문에,

내가 정하지도 않은 나를,

다른 잣대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사회초년생이 겪는 문제만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른의 역할을 할 수 없게,

주위에서 왈가왈부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결국 마주해야 하는 것이,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들고,

스스로의 힘으로 헤엄쳐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고,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정상이다.


어른의 삶에서,
다양한 온도차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그저,

작은 응원 속에서,

자신의 페이스를 다듬어 나가면 된다.


어른의 삶을 살면서,

아기펭귄의 마음을 가지는 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첫 시작의 떨림이 지나가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바빠지곤 한다.


그때마다, 스스로가 선배 펭귄이 되어,

속도보다는 작은 성취를 할 수 있게,

스스로의 아기펭귄을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펭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상이 아무리 차가워도,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작은 발걸음 하나에도
'괜찮아'를 건네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