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각에서 본 장점
어떤 책들이 새로 출간되었는지 둘러볼 겸 서점에 갔다. 끌리는 제목과 목차가 있는 책 몇 권을 선정하고, 정말 필요하다 싶으면 사거나 인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보는 것이 요즘 나의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책을 보던 중 문득 육아서에는 어떤 주제들이 많을까? 란 궁금증이 생겼다. 육아 분야 서고에 비치된 책의 제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주로 1) 아이의 심리/발달과정, 2) 부모의 자세, 육아법 3) 아빠 육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이 다수였다.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가 중요하다는 주제의 책을 훑어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주양육자로서 아빠가 함께 하는 것을 강조하는 육아서가 있는데, 그럼 주 양육자가 아빠인 나는 워킹맘인 아내가 함께 육아를 할 때 어떤 점이 좋을까?’
23개월 아이에게 어떤 점이 좋은지 물어볼 순 있으나 아직 답변은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니 철저히 내 관점으로 내 중심으로만 생각해보겠다. 참고로 나는 관련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고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의견 개진하는 것임을 먼저 밝힌다.
정리하다 보니 1) 나의 육아 수행 측면, 2) 아이에게 주는 영향의 측면, 3) 기타 세 가지 대분류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람마다 각각의 개성이 있듯, 아내와 나의 육아 스타일도 다르다. 물론 굵직한 육아 철학은 서로 대화를 통해 맞추지만 세세한 것들은 각자의 스타일에 맡긴다. 이것을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주안점을 두지 않는데 (또는 못하는데), 아내에게는 강점인 부분들이 필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아내가 던지는 코멘트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기도 하고,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유아 소모품 재고 관리나 옷 사기 등이 있다. 난 기저귀가 몇 개가 남아 있는지 잘 기억을 못 하고 언제 어디를 이용해야 가장 합리적인 구매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 데 반해, 아내는 재고에 대해서 항상 인지하고 있고, 계절 별로 필요한 필수 옷가지에 대해 훤히 꿰고 있다. 얼핏 보면 사소할 수 있지만 기저귀가 모두 소진되어 없는 대참사(?)를 막아주니 RM(위험관리)에서 장점이 있다고 본다.
또한, 매사에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면 전담 육아를 하며 계속 마음속에 불편히 자리 잡은 '미뤄둔 일' 이 있거나 그것조차 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 내서 저것 해치워야 하는데'라고 다짐한 것들이 생길 때쯤 아내가 구원투수로 등판해서 해결하거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아내가 완벽히 벌어주어 마음 한편의 고민을 해결한다. 도움 없이 나 혼자 해야 했다면 아이의 집중 견제 속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전 글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한 바 있는데, 내가 급한 일을 봐야 할 때 아무 걱정 없이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육아의 숨통이 트인다. '아이가 잘 있으려나, 밥은 잘 먹었을까' 등등의 걱정 하나 없이 집중해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상황이 형성되면, 경력 단절을 극복할 자기계발 시간이 일정 부분 확보된다. 아내가 일찍 퇴근하는 날에 맞춰 평소에 내가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보니, 나도 제대로 환기할 수 있어 좋다.
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짧더라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지 요즘 들어 새삼 느낀다. 혼자 마트에 장 보러 가거나, 지근거리에 혼자 차를 몰고 가서 먹을 걸 산다던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소소할 수 있지만, 나에겐 큰 에너지이다.
주 양육자가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의 현재 발달 상황을 가장 근거리에서 실시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며, 어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오늘 해내는 모습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이러한 발달 상황은 자주 가족 간의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며, 그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주 양육자이다.
주 양육자의 시각에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퇴근한 엄마가 합류한 시점부터 아이의 표정과 기분은 또 다른 버전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빠와 기분 좋게 놀고 있었다 하더라도, 엄마가 함께 자리하여 놀면 더욱 기분이 좋아지고 얼굴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행동의 변화도 보이는 것 같다. 우리 아이를 예로 들면, 아직 완전한 문장을 말할 순 없지만, 둘이 함께 있을 때 문장을 말하는 빈도가 더 늘어나고, 흥얼거리는 횟수도 많다.
여러 매체와 책에서 이미 많이 언급된 내용으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놀잇감으로도 다른 방법으로 놀아주다 보니 아이에게 다양한 놀이 방법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셈이 된다. 매번 새로운 장난감을 사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양한 놀이 방법은 아이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 또 서로의 놀이 방법을 벤치마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은연중에 아내의 놀이법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며, 아이의 반응이 좋으면 잘 익혀두었다가 아내가 없을 때 써먹기도 한다.
아이 역시 골라서 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엄마가 읽어주길 바라는 책과 아빠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이 구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엄마와 잘 읽었던 책을 다음날 아빠랑 읽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다른 책을 골라 주는 모습 속에서 엄마, 아빠의 다른 자극을 골고루 섭취하려는 아이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엄마와 아빠가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면 양가 부모님 역시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것 같다. 기분 탓일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이유를 얘기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 든든한 양육자(엄마)가 한 명 더 있다 보니 새로운 도전(여행 등)을 많이 계획하게 된다. 이때 조부모님과 함께 하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다 보니 아이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 엄마, 아빠가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시는 부분이 있고, 그것이 할머니 할아버지로의 역할에 더 많은 동기 부여가 되는 효과가 있다.
- 아이가 좋아하는 것, 현재 아이의 특성에 대해 아빠가 보는 시각과 엄마가 보는 시각으로 설명드리니 더욱 입체적으로 아이를 이해하실 수 있게 되고, 조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요즘 좋아하는 놀이 방식이랄지, 주중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며 어떤 표현을 했는지, 예전엔 너무 좋아하는 음식인데 최근에 안 먹는 음식은 어떤 것들인지 등이 있겠다. 결국 양가 부모님과 아이가 편히 관계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이 된다는 것이다.
* 본 글은 나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함께하는 육아'를 기술한 것일 뿐, 어쩔 수 없는 환경과 여건 속에서 홀로 양육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는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