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대화법 향상의 기회이다_01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프로그램 진행자의 소개 멘트나 신인 아이돌의 소개 인사 속에서 많은 고심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소개 인사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아 청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음이 간접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방송 프로그램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소개는 끊임없이 이뤄진다. 업무 석상에서 명함을 교환하며 이뤄지는 대화에서부터 회식자리에서의 건배제의와 친목 모임에서 나누는 가벼운 인사까지. 우리는 다양한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남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중에 나라는 사람이 기억되게끔 하기 위한 전략을 생각하는데 우리는 익숙하다. 이름으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주변 환경과 맥락을 활용하는 소개, 자신만의 개인기, 감동적 멘트 등등 각자가 고심하고 연습한 소개를 한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소개 내용 중의 일부가 대화의 첫 주제로 유연히 흘러가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주제로 전환되기도 한다.
저는 23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입니다. 육아휴직을 한 지 6개월이 되었네요
최근에 있었던 모임에서의 내 소개다(3개월 전 얘기입니다). 남성 육아 휴직자가 증가하고 있긴 추세지만 아직은 어색한 사회인식 탓인지 소개 중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순간에 참석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소개 전략 중 나의 처한 상황 자체가 흥미를 유발하는 사례였다.
위 소개는 적어도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백이면 백 이 소개로부터 추가 질문을 포함한 대화가 이어진다. 이는 낚시력(?)이 뛰어난 소개임이 분명하다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날을 곱씹어 보니 위와 같이 소개했을 때, 빈번하게 듣는 질문 또는 코멘트를 묶어볼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선 내가 육아휴직자라고 소개했을 때 상대방이 대개 어떤 질문과 코멘트를 했는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아마도 육아 휴직한 아빠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자칫 루즈해졌을 수 있는 내 육아휴직 기간에 대한 정리이자, 다음에 만약 두 번째로 육아휴직을 하게 된다면 기억해두어야 할 내용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상당히 높은 빈도로 들었던 반응이다. '회사가 육아휴직을 승인해 주었다니, 그 회사는 정말 직원 복지가 좋은가 봐요' 란 의미가 담겨있는 반응으로, 대개 질문형이라기 보단 감탄사와 비슷한 느낌의 코멘트이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대화의 주제는 실로 다양한데, 간헐적으로 자신의 주변인 중에서도 육아휴직 한 아빠가 있다는 내용, 아이와 연관된 질문으로 넘어가는 경우, 또 회사의 근무환경에 대한 질문이 오기도 한다. 물론, 이 질문에는 항상 "회사에서 제가 남성 육아휴직 첫 사례입니다. 사례는 만들어가는 거니깐요. 하하."라는 답변을 함께 드린다.
이 반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주로 남자분들의 반응으로 ‘나도 육아휴직 내고 싶어요, 뭔가 여유로워 보이는 삶이 부럽습니다.’의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지금의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나 자녀와의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반응 이후에는 육아 휴직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어떻냐는 질문이 동반된다.
두 번째는 주로 엄마, 할머니 들로부터 나오는 반응이다. 남편도, 아들도, 사위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놓인 환경이 그렇게 되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아이의 연령이 비슷한 경우에는 아이의 관심사, 행동 등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며 육아 관련 노하우 전수(?) 또는 공유를 해주신다.
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부터 이런 반응을 보았다. 내가 육아휴직으로 아이를 전담해서 육아 중이라고 하면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재확인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었다. 이럴 때는 함께 힘듬을 이겨나가자 라는 동지 의식이나 용기를 북돋워 주기보다는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달라는 식의 뉘앙스가 좀 더 많음을 느꼈다. 나 역시 직접 육아를 해보니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게 된 터라, "저도 직접 해보니 옆에서 함께 도우며 육아할 때와 제가 육아의 최종 책임자가 되었을 때랑은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라고 답변하곤 했다. 실제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소모가 되지만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외적인 비 금전적 보상(어떤 점에서 보상이라고 느끼는지는 개개인이 다를 것 같다)이 부족하거나 부재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들도 힘들어하는 육아를 어떻게..'.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걸어간다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 위의 반응을 보인다. 실제는 대단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이나 새로운 국면에 맞이하게 되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며, 주로 상대는 육아휴직을 하면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든지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것 같다.
위의 질문을 하시는 분과는 육아를 주제로 상당히 깊게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게 된다. 머릿속에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지를 생각하고 계시는 분일 수도 있고 오히려 육아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의식구조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나를 알고 있는 사람 또는 구면인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질문들을 많이 받았고 나 역시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며 내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이 대화 과정 중에는 필수적으로 육아휴직을 상대방에게 추천하겠는가에 대한 나의 의견과 경험적 근거들을 포함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육아 전선에 뛰어들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성인과의 대화의 기회가 이전에 비해 급감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대화의 소재는 아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 상황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친히 질문해 주시는 분들에 대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중하게 답변을 드리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그럴 때면 조금씩 작성해 두었던 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 글에 대한 의도치 않은 홍보(?)와 함께 생각해왔던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