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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Jan 17. 2019

편하게 얘기해 나는 열심히 들을게

아이의 말을 유심히 들으며 나를 돌아본다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족에 대한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에 내가 없더라고. 그 그림을 보고 충격받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3개월 정도 휴식기를 가진 형님 한분과 점심식사를 했다. 일터와 집의 거리가 멀어 늦게 들어가는 일이 잦다 보니 아이의 그림 속엔 아빠의 실루엣 조차 없는데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던 형님이었다.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던 터라 만나자마자 질문드렸다.


“그래서 지금은 그림 속에 들어오셨나요?”
“응 그럼, 확실히 함께 놀아줄 시간이 많았으니깐”

 

3개월간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고 말씀하시며 형님은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이전에 네가 얘기한 대로 아이의 얘기를 많이 듣게 되더라고. 근데 일터로 와보니 이렇게 듣는 연습을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되더라”


아이와 함께 놀면서 아이의 말을 경청하게 되었고, 3개월이란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일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을 들으니 좋았다. 물론 다른 분의 얘기를 듣고 공감이나 조언을 많이 해주셔야 하는 형님의 직업 특성상 경청은 사실 필수적인 요소여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와의 교제가 일을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는 형님의 말을 들으니, 그냥 나도 1년간 정체하진 않았겠다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가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전에는 적합한 단어를 몰라 몸짓이나 울음으로 표현했다면 지금은 자신의 의사를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너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니 편하게 자유롭게 얘기해봐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더 신나서 말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가 더듬더듬 문장을 이어가고 있을 때 대신 문장을 매끄럽게 말해 주고 싶은 충동, 아이의 의사보단 내가 세워놓은 계획대로 실행하려고 하는 충동 등 육아를 하면서 종종 듣기가 아닌 말하기에 비중을 두려는 습성이 나온다. ‘내가 말하는 게 무조건 옳아 난 어른이고 넌 어린이니깐’을 전제로 대화보단 가르치려는 말투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의도적으로 줄이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


아직 말을 완전히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가 하는 말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마치 외국어를 처음 할 때처럼 눈을 천정으로 치켜뜨며 단어와 문장을 생각하려고 애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아빠에게 설명하기 위해 이때껏 배웠던 단어를 총동원한다. 웃는 얼굴과 눈 맞춤으로 화답하면 아이는 자신만의 세상을 그려낸다. 지금 있는 이곳이 낚시터가 되기도 하고, 공룡들의 주둔지가 되기도 하며, 기차역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아이는 솔직하다.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며 어떤 때는 협상 불가일 정도로 완강하기도 하다. 전혀 말로 설득이 되지 않는 상사를 만난 느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의 입을 닫고 우선 귀를 연다. 직장에선 나름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설득을 잘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육아 세계에선 어림도 없다.  


개월 수가 올라갈수록 행간을 읽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자신의 진짜 의도를 드러내진 않은 채 다른 얘기들만 늘어놓는다. 앞뒤 정황들을 살피며 들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개 이런 상황은 감정의 변화와 동반하는데 아이가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을 때 나타난다. ‘아빠가 이렇게 해서 많이 속상했어?’라고 물으면 그제야 ‘응’이라고 얘기하며 마음이 풀리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이 컨택과 귀담아듣는 표정,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듣는 자세, 전후 분위기를 파악하며 읽는 행간의 의미. 비단 육아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 중에 나는 상대방의 의견을 얼마나 경청하고 있는가? 온전히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반응하고 있나?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한 의도는 무엇인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듣고, 그 속에서 상대방의 감정과 필요를 헤아리는 능력. 노력해도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직장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듣는 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상사의 말은 어쩔 수 없이(?) 집중해서 들어야 하지만, 연차와 직급이 올라갈수록 듣는 능력은 온전히 개인의 자율에 맡겨진다. 팀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리더가 되는 것은 누구나 꿈꾸지만 현실은 모두가 그런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소통’이라는 주제가 정치계, 비즈니스계 리더십에서 끊임없이 화두가 될까.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그가 들려주는 얘기를 귀 기울여 듣는 내 모습은 휴직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아이가 집중해서 말하려고 할 때는 같은 눈높이에서 최대한 눈을 보며 얘기를 들었다. 말을 했는데 내가 잘 못 알아 들었으면 ‘아빠가 아직 이해를 못했어 다시 한번 얘기해 줄래?’라고 아이에게 얘기한다. 아이의 의도나 선호사항을 묻고 하루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필요를 얘기하고 그것을 듣는 과정에서 훈련한 성과는 어떤 것인지 다시 업무를 하면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설령 눈에 보이지 않는 미미한 성과라 할지라도 분명 난 단 일보라도 전진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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