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일기] 보이지 않는 선과 삶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우리는 사건 없는 삶,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맞물리지 않는 삶을 경험하고자 한다. 우리의 삶 속에 사건들을 가져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1년 전, 2018년 11월 24일 토요일, 서울에 첫눈이 내린 날.
아침에 외부 강의를 마치고 책방에 도착했다. 책방에 오면 문 앞 택배상자를 들이고 불을 켜고 음악을 튼다. 그런데 와이파이로 매일 재생하던 음악이 어떻게 해도 켜지지 않았다.
12시, KT 아현지사 건물 화재 발생으로 통신이 불가하다는 안내 문자가 소란스러운 알림음을 내며 전송되었다. 난 그때까지도 일시적인 문제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단 점심을 빠르게 먹고 책방의 늦은 오픈을 준비했다. 오픈하자마자 고등학생 또는 대학 신입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책방을 찾았다. 책방은 와이파이로 연결된 카드기를 사용하고 있는지라 카드 결제가 불가능했고, KT 통신사를 사용하는 유저는 계좌이체나 카카오페이도 불가능했다.
나는 유플러스 사용자라 핸드폰 사용이 가능했다. 음악 플레이어, 결제 시스템, 노트북 등 모든 와이파이 가능 기기를 모두 내 핸드폰에 연결했다. 오픈 초반 빼고는 큰 문제없이 운영이 가능했다. 물론 한 달 데이터 사용량을 6시간 동안 모두 사용했지만.
하지만 현금이 없어 점심을 외상 했다는 손님, 못 먹었다는 손님, 유플러스 와이파이 존을 찾아 헤맸다는 손님, 핸드폰을 시계로 쓰고 있다는 손님, 불안하다는 손님, 친구가 약속에 늦고 있지만 연락이 안 된다는 손님을 종일 만났고, 책방 마감 후 찾아간 인근 식당과 카페는 오로지 현금만 가능했고, 주차장 결제도 현금만 가능했다.
화재는 10시간 만에 진압됐지만, 사고 이튿날에도 인근 지역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현대 도시는 초연결되어 있다.
특히 메가시티일수록 연결망은 더 복잡하고 촘촘하다. 스카이 스크랩퍼일수록 ICT 기술에 의존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도시는 모든 분야에서 더욱 기술과 통신에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단순히 안전관리의 소홀, 기업의 보상금액, 심리적 불안, 와이파이 난민의 등장, 경제활동과 수익의 감소, 도시 생활의 불편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 도시 연구자는 물론, 기업과 행정도 도시에 관해, 도시의 삶에 관해, 도시의 미래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인터넷망으로 초연결 된 현대 도시의 재난은 더 이상 자연재해나 전쟁, 감염성 바이러스 등뿐만이 아니다. 우린 모두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