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일기] 밤의 시간

김수영, 「달밤」, 『달나라의 장난』

by 구선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 보다. 나는 커단 서른아홉 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 않고 꿈을 버린다. 피로를 알게 되는 것은 과연 슬픈 일이다. 밤이여 밤이여 피로한 밤이여.”

- 김수영, 「달밤」, 『달나라의 장난』


삼십 대 초반까지의 나는 밤을 잘도 샜다. 꼴딱꼴딱 밤을 새우며 과제도 하고 돈도 벌고 글도 쓰고 술도 마셨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일찍 잠을 자는 습관이 생겼다. 저녁 시간을 밖에서 보내지 않으면서부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생기지 않았지만.


일과를 마치면 집에서 저녁을 먹고 못다 한 일을 하고 티브이를 보고 책을 읽거나 산책을 나선다. 집 근처 공원과 산책길로 나서기도 하고 대형마트나 아울렛에 가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멀뚱히 누워있는다.


그렇게 밤의 시간을 나한테 쓰면서 몸의 피로도 마음의 피로도 줄었다. 그리고 일찍 잠에 들며 꿈도 늘었다. 달밤에 꾸는 꿈만 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한낮에 꾸는 꿈도 늘어갔다.

김수영은 서른아홉 살에 서슴지 않고 꿈을 버렸다고 말했다. 서른아홉 살이 되는 나는 또다시 꿈을 꾼다. 꿈을 버리는 것이 피로하지 않은 삶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일단 꾸는 꿈은 꾸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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