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오래된 터널을 걸어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유년에 가 산다. 유년에서 아직 살고 있다. 때문에 오늘 낮에 내 옆모습이 굳어졌고 불안했으며,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유년에 아직 살고 있는 무엇 때문에 내일 나는 우울하거나 발랄하거나 어쩌면 축축할 것이다.”
- 박연준, 《소란》
십 대의 나는 감정이 과잉된 상태였다. 미움도 사랑도 좌절도 희망도. 그 무엇 하나 정상 수치를 가지지 못했다. 모든 과잉 감정을 혼자 끙끙 끌어안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주 울었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괜히 웃었다. 그땐 일기를 참 열심히 썼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열한 살로 기억한다. 누군가 편지인지 일기인지 헷갈리는 것을 두고 떠난 후 멍하게 일 년이 지난 후였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썼다. 교환일기가 유행이었던 중학교 때, 교환일기 여러 개와 진짜 일기를 썼고 손으로 만든 일기장과 다이어리가 유행이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보여주기 위한 일기를 썼고 진짜 일기를 또 썼다.
하지만 진짜 일기장이 채워지면 누가 볼까 서랍 깊숙이 숨기다가 음침한 곳에서 찢어 버리기 바빴다. 처음엔 불로 태워 버려야지 생각했지만 라이터를 켜는 게 무서웠고 불이라도 날까 겁났다. 이후로 동네에서 가장 더러운 쓰레기통을 찾아 찢어 버렸다. 쌓아둔 감정을 버리고 십 원어치라도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백 원어치쯤 나아진 이십 대와 주눅 들지 않을 만큼의 삼십 대를 보냈다. 스물이 넘어선 불안했던 유년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서른이 넘어선 극복했다는 거짓된 믿음으로.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넘어 곧 사십 대가 되는 나는 아직 가끔 유년에 맞닿는다. 예기치 않게 슬쩍 와 닿는 유년의 기억에 놀라도 괜찮은 척 넘길 정도 딱 그 정도가 되었다.
수많은 일기장을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유년의 기억에서 벗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