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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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좋은 어른이 되거나 깊은 사람이 되진 못했지만 내 라이프스타일이 변하였다. 밤의 시간을 나를 위해 보내는 일, 책을 읽고 무언가 쓰는 시간이 많아진 일, 만나는 사람의 직업과 취향이 달라진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변화는 거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일이다.
난 소음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지하철, 버스, 택시, 길, 카페에서 마주치는 나와 상관없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답지 않은 연예 뉴스와 대립하는 정치 견해, 시댁과 직장 상사의 뒷말 등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대화들이 소란을 넘어 나에겐 세상 쓸모없는 소음이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건 지하철을 타건 길을 걷건 하물며 회사에서 일할 때도 내 귀엔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때론 오디오북을 때론 팟캐스트를 때론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외부의 소리를 차단했다. 가끔 귀가 피곤하거나 배터리가 없으면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꽂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씩 글을 쓰면서 거리의 소음은 소음이 아니었다. 거리의 소음은 글쓰기의 소재가 되었고 쓰던 글의 실마리가 되었고 언젠가 쓸지 모를 상상 속 소설의 대화상자가 되었다. 그렇게 이어폰은 점점 진짜 듣기를 위해서만 쓰였다. 음악도 팟캐스트도 꼭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게 되었고 진짜 소음과 소리를 구분하게 되었고 소리와 글쓰기 소재를 구별하게 되었다.
이젠 길을 걷다가 메모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메모는 잊히기도 잃어버리기도 버려지기도 하지만 종종 그때 그 시간 속에서 튕겨 나와 나의 시간이 되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