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미와 숭고는 근원이 같다. 그러므로 숭고를 미에 대립시키는 대신 해야 할 일은 내면화할 수 없는, 탈주체적인 숭고를 다시 미에 반환하고, 미와 숭고의 분리를 철회하는 것이다.”
-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나는 시각이 예민한 편이다. 균형 잡힌 것, 매끄러운 것, 조화로운 것, 자연스러운 것, 서정적인 것, 자유로운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아름답다는 것만으로도 그 쓸모는 충분하다. 물론 아름다움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주 무언가에 마음을 뺏긴다. 눈을 뗄 수 없는 자연풍경이나 미술 작품, 마음에 쏙 드는 책 디자인이나 건축물, 여배우의 아름다움에도 마음을 뺏긴다. 어쩌면 아름다운 것만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부쩍 진정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움이 허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임산부 핑크 배지를 단 젊은 여자가 손잡이를 부둥켜 잡고 서 있다. 배가 당기는지 자꾸 배에 손을 댄다. 임산부를 위해 비워두고 배려해달라는 방송이 나오지만 핑크 좌석은 이미 만석이다. 임산부 앞 핑크 좌석에 앉은 조금 더 젊은 여자는 누가 봐도 예쁜 얼굴이다. 젊은 여자는 화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옆에 앉은 사람을 팔꿈치로 쳐가며 눈썹을 그리고 눈썹을 올리고 눈썹을 꼿꼿이 세운다. 이제야 마음에 드는지 거울을 보며 눈을 찡긋거리고 입술과 볼을 붉게 칠한다.
그때 옆에 앉은 누추한 차림새를 한 늙은 여자가 벌떡 일어난다.
“여기 앉아요. 내가 못 봤네요. 힘들죠?”
“아니에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던 여자는 늙은 여자의 손길에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는다. 초라한 외모지만 늙은 여자의 몸짓과 손짓은 충분히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자신 안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발견될 수 있으며 자신을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도 있다. 나도 강요당하는 허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진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길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