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르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불행은 언제나 알 듯 모를 듯 찾아온다. 잊을만하면 날아드는 고지서처럼 나에게도 그렇게 찾아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라는 의문을 갖기도 전에 불행은 눈앞에서 시끄럽게 울려댔다.
초등학교 때였다. 아니 국민학교 때가 옳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기분 나쁘게 울렸다. 학교에 빨리 가라는 아빠의 말에 동생 손을 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학교를 마치고 왠지 모를 불안한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온갖 곳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날 밤 우린 도망치듯 집을 떠났다.
며칠 후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 살림살이를 챙기러 돌아왔다. 창고라기 보단 그냥 아파트 지하에 짐이 내팽개쳐져 있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생필품을 챙겼다. 옷가지, 작은 가전제품 등이었다. 새로 산 장롱, 세탁기, 냉장고 따윈 가져갈 생각조차 못했다. 냉장고엔 한가득 사놓은 복숭아가 물러 터진 채 남아있었다. 깜깜하고 시큼한 냄새를 풍기던 지하창고에 퍼지던 복숭아의 달큰한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돈다. 그땐 냉장고보다 냉장고 속에서 무른 복숭아가 어찌나 아깝던지.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불행이 날아들 것만 같은 날에 복숭아를 산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복숭아가 마치 내 불행을 삼켜주었으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