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그러나 깊게

나의 감상법에 대하여

by urbansubstances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참 많이 들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락, 팝, 힙합, 가요, 클래식도 다 좋아했다. 하지만 감수성이 폭발하던 10대, 귀가 처음으로 트이던 그 시절에는 유독 락 음악에 깊게 빠져 있었다. 보컬이 있든 없든,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보컬은 그저 기타, 베이스, 키보드 같은 '하나의 악기'였을 뿐이었다. 음색, 창법, 감정선, 희미하게 들려오는 단어들과 메시지들—그 정도면 충분했다. 가사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내가 듣던 대부분의 노래들은 10대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가사가 너무 난해한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별 의미 없으면서 그냥 있어 보이는 헛소리의 향연인 가사들도 많았고 찾아봐도 자원이 그 당시에는 인터넷에 충분하지 않았다. (요즘은 youtube에서 노래의 가사 찾아보기에도 잘 되어있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는 스마트폰도 존재하지 않았고 youtube도 없던 시대였다) 그냥 적당히 알아듣고 대충 눈치껏 이해하고 넘기는 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약에 취한 상태로 작사해서 말도 안 되는 미국인들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을 가사들을 썼던 밴드들도 많았다.


RHCP - 이 양반들 가사 보고 먼 소린지 한 번에 이해 한 사람 나와. 너야? 당신을 천재로 인정합니다.

물론 노래방에서 부르기 위해 가사를 외우기도 했고, 너무나 궁금한 노래는 어떻게든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탐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음악을 감상할 때 중심에 있었던 것은 가사가 아니라 '분위기'였다. 음악이 나에게 전달해 주는 감정, 사운드의 질감, 악기들의 조화. 그런 것들이 나를 음악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 곡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노래의 디테일이나 감정의 변화를 발견하는 걸 즐겼다. 그렇게 나는 그 곡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둥둥 떠다니다가, 잠기기도 하고, 다시 떠오르기도 하면서. 나의 귀와 마음을 노래에 흥건히 적시며 깊숙이 음악과 친밀해졌다.


그런 감상 방식은 자연스럽게 독서에도 이어졌다.


나는 책을 빨리 읽지 않는다. 요점만 쏙쏙 뽑아내듯 읽지 않는다. 대신 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속으로, 감정선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듯이 읽는다. 그 안의 공기, 빛과 그림자, 침묵 같은 것들까지 함께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문장과 문단을 다시 읽기도 하고, 한참 진도를 빼다가 다시 앞으로 가서 어떤 부분들은 다시 읽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은 밑줄을 긋고, 등장인물 욕을 하거나 기뻐해주거나 답답해하는 등 내 감정이나 생각을 옆에 적기도 한다. 좋은 표현과 아름다운 문장들을 곱씹어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노트에 적어보기도 하고 감탄하고 작가의 의도를 상상해 보고,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작가의 고민에 공감해보려고 하고, 작가의 시선을 나도 같이 보고 느끼려고 하는 등 이렇게 다방면으로 소통하며 책과 친해지는 방식이 좋다.


이런 나의 독서 방식과 잘 맞는 책을 만나면 너무 반갑고 재밌어서 일부러 책을 최대한 아껴서 하루에 조금씩만 읽는 식으로 읽기도 한다. 마치 어렵게 구한 허니버터칩을 최대한 아껴먹는 것처럼. 그리고 영어로 읽은 책이면 한글로 번역된 책을 보기도 한다. 책의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그림, 사진, 도면, 다이어그램 등이 있는 책들은 한참 동안 이미지들 감상하며 보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러다 보니 읽다가 만 책들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독서 방식이 태어나게 된 나의 첫 경험은 Paulo Coelho≪연금술사≫였다. 고등학교 1학년때, 아빠의 서재에서 읽을만한 불어책을 찾다가 이 책을 우연히 집어 들었다. 오래된 책이었기에 겉표지가 딱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 책이 아직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별생각 없이 시작했던 책의 그 문장들이, 표현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한 문장, 한 단락마다 눈앞에 그림이 4D로 펼쳐지는 것 같았고, 나는 그 책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연금술사 불어책 커버 - 재미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첫 경험이 그렇듯, 너무나도 강렬하고 황홀하였지만 빨리 끝내버린 나는 바로 교보문고에서 영어판을 구해서 읽었다. 이상하게도 처음 불어로 읽었을 때의 그 낭만적임이 덜 느껴졌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언어가 달라지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과 감정의 결도 달라지는 게 신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치 같은 프롬프트로 Ai 이미지 생성을 해도 매번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다음에는 한글책을 구해서 읽었다. 이번에는 영어로 읽었을 때보다 더더욱 낭만적임이 더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 왜 이렇게 맛이 없고 밋밋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의 문제인가? 이 책의 원본은 포르투갈어로 적혔을 테고 뭔가 원본의 언어와 점점 멀어지면서 분위기의 선명함과 강렬함이 더 떨어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책을 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감정의 매개체’로 더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정말 기가 막힌 책. 간결한 문장인데도 불구하고 풍성한 그림이 눈앞에 그려진다.

최근에는 John WilliamsStonerRick RubinThe Creative Act: A Way of Being을 읽으면서 이 감상법의 즐거움을 다시 떠올렸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책의 문장 하나하나에 깊게 빠져들며 읽는 그 방식, 그 느린 감상의 쾌감이 너무 반가워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두 책도 너무 소중해서 최대한 아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있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책들이다.


굉장한 내공의 영감을 주는 가르침을 시처럼 노래처럼 표현함.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그냥 예술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 나만의 속도로 책을 감상한다. 마치 음악을 듣듯이. 느리게, 그러나 깊게. 가끔은 완전히 잠겨서, 단어와 문장 사이를 유영하듯, 세상의 가장 조용한 수면 아래를 헤엄친다.


그게,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고, 세상을 감상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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