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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오브...(2023)> the Hour

[퀴네필 스타터 팩 09]

by 수환
womanof2023film.jpg <우먼 오브...(Woman of...)> the Hour


안제이 Andrzej 는 사실 아니엘라 Aniela 이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표현할 말을 알지 못했어도, 그래서 자신도 의사도 헛다리 짚는 시간을 보내고 중년이 되어버렸대도, 아니엘라의 고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이란 건 어쩌면 만회될 수도 있는 것만 같다. 공동연출자인 마우고자타 슈모프스카 Małgorzata Szumowska 와 미하우 엥그레르트 Michał Englert 는 고전적인 영화 문법의 틀을 빌려 새 시대의 연대를 구한다.

80-90년대 많은 것이 변화하던 격동의 폴란드에서도 트랜스젠더는 동성애자들 중 특이한 종류 정도로 치부되었다. 관련 법안이 정비되지 않아 자신의 부모를 고소해야 성별 정정이 가능했던 법 조항은 무려 2025년 상반기가 되어서야 폐지되었다. 이전에 영화 <팬픽>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폴란드는 유럽 내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특히 열악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한 곳에서 아니엘라는 끝내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아 2020년대를 맞이한다.

자국에서 활동 중인 트랜스 배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두 감독은 시스젠더 여배우인 마우고자타 하예브스카 Małgorzata Hajewska-Krzysztofik 를 기용하여 사회적/의료적 트랜지션을 진행하는 중년의 트랜스여성 아니엘라의 이야기를 담는다.

트랜스여성 캐릭터를 시스젠더 남배우가 연기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극 중 캐릭터와 배우의 실제 삶은 물론 (영향을 주고 받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둘은) 별개의 것이다. 그러나 극 밖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셀럽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꽤 자주, 사실은 거의 모든 순간에 트랜스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한 사람의 정체성을 무효화하는 일에 닿아있곤 한다(트랜스남성 캐릭터를 시스젠더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정체화한 성별이 캐릭터와 같은/비슷한 배우가 연기하는 극을 선호하는 것이고, 드라마 <포즈(2018-2021)>와 같이 트랜스 배우가 트랜스 역을 맡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트랜스 아메리카(2005)>나 <이태원 클라쓰(2020)>와 같은 캐스팅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와 비슷하게 <우먼 오브...>의 제작진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는 이야기에 사려 깊게 접근하려 애쓴 것으로 보인다.

아니엘라에게는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녀의 부인 이자 Iza 와 아이들, 그녀에게 고소당해야 했던 친부모가 있다. 이들은 아니엘라와 때론 가깝다가 때론 멀어지곤 하면서, 서로를 원망하고 수용하면서 결국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가족이 된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초조함을 느끼고, 아이들이 아빠를 엄마처럼 여기는군 같은 말을 듣기도 하며, 사소한 경범죄를 두고 과도한 징역형을 사는 등 주인공은 온갖 오해와 모욕과 불의 앞에 내던져진다. 자기 자신으로 살려는 사람은 때때로 너무 많은 값을 치러야 한다.

아니엘라가 겪어내는 괴로운 삶과 다르게 화면의 톤은 따뜻하다. 영화는 자연광 아래에서 펼쳐지는 멜로드라마 같기도 하다. 그러니 주인공은 자기 자신으로 행복할 것이다. 이자 역의 요안나 쿨리크 Joanna Kulig 의 연기도 좋고, 폴란드의 거장 안제이 바이다 Andrzej Wajda 감독의 작품들의 제목에서 따왔을 "Woman of..."라는 타이틀도 의미가 있다. 극장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이지만 영화에게는 여전히 힘이 있다. 변화를 부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바로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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